5천원 어치의 신뢰를 아시나요?
- 작성일
- 2002.05.07 22:04
- 등록자
- 이경옥
- 조회수
- 1522
연이틀 봄비가 촉촉히 내렸네요.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산천초목들이 비에 씻겨 방금 이발소에 다녀온 신사의 머리칼처럼 말쑥하기만 합니다.
이런 날이면, 저도 빳빳한 어깨를 허물고 나직나직 살고 싶습니다.
저는 해도동에서 흥해에 있는 직장을 다니는 자칭 수퍼우먼입니다.
어제 아침 출근길에는 참 별난 헤프닝을 겪었습니다. 자동차 시동을 걸면서 연료가 바닥이 났다는 걸 알았지만, 집 근처에 주유소도 없는데다 바쁘기도 해서 그대로 출발을 했습니다. 나루끝을 벗어나 7번 국도를 달리는데 연신 깜빡거리는 주유표시등에 자꾸 신경이 쓰여서 급유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에 한번도 들린 적 없는 D주유소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급유를 주문하고 지갑을 꺼내기 위해 핸드백을 여는 순간, 지갑을 집에 놔 두고 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저씨, 잠깐만요!!!"를 외쳤지만, 이미 급유는 시작되었고... 현금은 물론 각종 카드, 운전면허증, 신분증도 모두 지갑 속에 꽂혀 있으니, 기름값을 치룰 방법은 물론 제 신분을 증명할 만한 그 무엇도 수중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낭패가 있나요?
그런데도 주유원 아저씨는 5천원 어치의 기름을 넣어 주셨습니다. 나중에 갚으라고 하면서요.
"생면부지의 사람인데, 내 인상이 돈 5천원 떼어 먹을 사람으로는 안보이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주유원 아저씨가 고맙기만 했습니다.
사실 자신부터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흉흉한 범죄사건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도층의 비리의혹 뉴스를 접하면서, "세상엔 믿을 만한 사람이 없구나!"하고 생가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기에 더욱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저를 신뢰해 주신 주유원 아저씨 덕택에 무사히 출근을 할 수 있었고, 하루 종일 기분도 좋았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저는 일부러 어제의 그 주유소에 들렀습니다.
5천원 외상을 갚으러 꼭 오리란 걸 별 기대하지 않았는지, 주유원 아저씨는 저를 알아 보지도 못하시더군요...
"아저씨! 저 어제 외상 기름 넣고 간 사람입니다. 기름 가득 넣고 어제 기름값도 받으세요. 어제는 정말 고마왔습니다."
그제서야 아저씨는, "아, 네에! 오셨군요!" 무척 반가와 하시는 표정이셨습니다.
아마도 매일 아침 출근길엔 7번 국도의 D주유소와 참 사람좋은 분으로 느껴지는 주유원 아저씨를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5천원 어치의 신뢰에 대한 기억 땜에 어쩌면 앞으로 저의 단골 주유소로 만들 작정도 해 봅니다.
만약 주유원 아저씨가 이 방송을 듣고 계시다면,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느꼈던 한아름의 고마움을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 신청곡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