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의 지붕 밑
- 작성일
- 2004.10.11 13:29
- 등록자
- 배경화
- 조회수
- 501
살면서 좋아하는 사람과는 늘 같이 있을 수 없고 싫어하는 사람과는 늘 부디쳐야 하니 인생의 모순이란게 바로 이것인가 보다. 한여름 그렇게 무성했던 나뭇잎도 색이 바래 떨어지고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때문에 세상은 사람들을 향해 문을 꼭꼭 걸어 잠그기 시작한다. 찬바람 때문인지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허전함을 이길 수 없다. 허전함으로 새벽녘에 일어나면 다시 잠을 청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과거의 기억을 하나 하나 더듬으며 그리운 사람들 얼굴을 하나 하나 떠올려 본다. 대학시절 같이 자취생활을 했던 친구가 유난히 떠오른다. 같이 사는 동안 내가 친구에게 잘 해 준 건 하나도 없고 친구가 일방적으로 내게 도움만 주었기에 미안한 마음 땜에 더 생각나는 것일게다.
대학 입학 원서를 손에 든 친구와 나는 처음으로 촌을 벗어나 대구란 곳에 갔었다. 원서를 제출하고 학교 뒤 시장 한 모퉁이에서 우동 한 그릇씩을 시켜 먹으며 우리들은 대학 입학에의 설레임으로 마냥 가슴이 부풀었었다. 틀에 박힌 공부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다는 기대감, 집과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해방감, 자취방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고 친구와 소꿉놀이하듯 재미있게 살 수 있을거라는 희망. 이러한 감정들이 뒤섞여 우리들은 묘한 흥분감을 느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관심을 끈 건 객지에서의 생활이 주는 무한한 ‘자유’였다.
우리는 대학 뒷문 뒤에 방 하나를 얻어 우리들만의 공간을 꾸몄다. 자취도 살림이라 새로운 살림살이를 장만하여 구색을 갖추면서 우리 둘은 신혼부부가 새살림을 차리면서 갖는 달콤함에 푹 빠져 있었다.
친구와 나는 밤이면 밤마다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 가며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아침에는 늦게 일어나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학교에 뛰어가기 일쑤였다. 친구와 나는 학과가 달랐기에 학교에서는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바쁜 하루를 보내곤 저녁에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만들어 먹었다. 떡볶이며, 잡채, 어묵국 등 갓 자취를 시작한 우리들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래야 뭐 뻔하지 않았겠는가? 근처에 같이 자취했던 친구들이랑 어울려 또 밤새 이야기하고 놀고 그래도 심심하면 근처 시장을 싸돌아 다니면서 우리들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여름 초입의 장마철, 우리들은 기말고사를 끝내고 나란히 방에 누워 있었다.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밧울 소리를 들으며 라디오를 켰다. 그 때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던 칸소네의 처량한 울림. 노래 선율이 왜 그리 우리들의 가슴을 후벼팠던지? 우리는 갑자기 센치해져서 첫사랑 이야기를 꺼냈고 각자의 첫사랑에게 편지를 써, 먼저 답장을 받은 사람이 한 턱 내기로 약속했다. 그 해 가을 친구는 첫사랑 오빠에게서 먼저 답장을 받고 내게 맛있는 저녁을 샀다. 가을이 깊어짐에 따라 친구와 첫사랑 오빠는 점점 가까워졌고 그들이 가까워진 만큼 나와의 거리는 멀어져 갔다. 나는 그런 친구에게서 섭섭함을 느꼈고 2학년에 올라오며 연년생이었던 동생이 대학에 진학해 동생과 자취를 하며 친구와는 헤어졌다. 친구와 나는 졸업할 때까지는 가끔씩 연락하며 지냈지만 어느 순간에 사는 게 바빠 서로가 연락을 끊게 되었다. 가끔씩 그 때를 생각하며 빙그레 미소 짓는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친구야!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란다.
포항시 남구 송도동 254-371번지 9통 5반 배경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