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탄 통근 열차에서
- 작성일
- 2004.10.11 21:02
- 등록자
- 엄진희
- 조회수
- 505
10월의 첫 토요일, 서울에 올라가야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녁 7시까지 도착하면 되기 때문에 멀미가 심한 나는 기차를 교통수단으로 선택했습니다. 대구에서 출발하는 15시 2분 KTX를 갈아타기 위해 포항 역에서 12시 28분에 출발하는 통근 열차를 탔습니다. 늘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로 갔기에 통근 열차는 처음 타는 것이었습니다. 역에 들어서니 왠지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차비가 새마을호를 타고 대구로 가는 것보다도 버스를 타고 가는 것보다도 엄청 저렴했습니다. 기분 좋게 차표를 끊고 시간이 남아 대합실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눈에 띄였습니다. 잠시 후 갑자기 줄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자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젊은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섰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동요 없이 의자에 앉아 계속 텔레비전을 보셨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줄을 섰는데 앞쪽에 똑같은 옷을 입은 커플이 다정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머리끝에서 신발 끝까지 똑같은 모습이 예뻐보이기도 하고 닭살스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신혼부부로 보기에는 다소 앳되어 보이는 커플이 어디 가는 길인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지는 순간 입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우루르 일어나서 입구쪽으로 몰려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줄을 서서 입장하던 사람들은 순간 당황해서 주춤거렸지만 노인들이 끼어드는 것을 허락해 주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때 젊은 아가씨 한 명이 할아버지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할아버지, 줄 서서 들어가셔야죠. 뒤로 가세요.”
할아버지는 도리어 짜증을 내며
“다른 사람도 다 들어가잖아. 뭐가 어때서.”
하고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분위기가 경직되었지만 앞에 있던 아주머니가 틈을 열어주셔서 할아버지께서 먼저 들어가자 아가씨도 아무 말없이 뒤를 따라 들어갔습니다. 어느새 사람들은 물이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플랫폼으로 들어서니 기차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나의 느긋한 걸음 뒤로
“야, 빨리 와 자리 잡아야지.”
하는 소리와 함께 타다닥 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나도 어느새 뛰고 있었습니다. 걱정스럽게 기차에 올라탔는데 아직 빈 자리가 많이 있었습니다. 통근 열차는 옛날에 탔던 비둘기호와 비슷했습니다. 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이리저리 둘러보는 짧은 순간에 빈자리가 없어졌습니다. 내 옆으로 할머니 세 분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할머니쪽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거친 손이 내 눈으로 들어왔습니다. 짧게 자른 손톱 밑은 까만 때가 가득했고 손 마디마디는 툭 불거져 나와 있었습니다. 검지 끝마디가 이상하게 구부러져 있는 손을 보니 갑자기 가슴이 싸해졌습니다. 평생 흙과 함께 살아온 할머니의 손을 더럽게 느낄 순 없었습니다. 갑자기 친정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여러 겹으로 옷을 겹쳐 입은 아저씨가 커다란 보따리를 옆에 두고 앉아 있었는데 필시 그 아저씨의 향기라 짐작할만 했습니다. 여러 겹으로 옷을 겹쳐 입어 처음엔 잘 몰랐는데 찬찬히 흝어보니 손이 없는 듯 했습니다. 말하지 못할 힘든 사연을 지닌 분 같아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 아저씨 옆쪽에 앉은 할머니는 무릎이 아프신지 의자 위로 다리를 올려 손으로 주무르고 계셨습니다. 그 아저씨에게서 풍기는 냄새를 느끼지 못하시는지 아니면 모른 척 하시는 건지 그냥 자신의 무릎 토닥이기에 바쁘셨습니다.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던 나는 중년의 신사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분은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을 신기한 듯 보고 계셨던 모양이었습니다. 그 신사분의 눈길을 피하는 사이 기차가 출발했습니다. 기차 안 사람들의 모습을 살피느라 바깥 풍경을 볼 사이가 없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풍경을 감상하면서 가을 여인이 되어 사색에 잠겨 기차여행을 할 줄 알았는데 사람 보는 재미에 빠져 창문 밖을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안강역에 도착하자 내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데 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이 냄새나는 아저씨 앞으로 갔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비켜 내 앞으로 와서 섰습니다. ‘냄새날 수밖에 없는 아저씨의 삶은 여학생은 이해하지 못할 거야.’ 하는 생각을 하며 여학생의 얼굴로 눈길을 돌리는 순간 그 여학생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했습니다. 짧은 웃옷과 바지 사이로 살짝살짝 드러나는 배. 괜히 민망스러워진 나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는데 여학생은 사람들에게는 신경쓰지도 않고 계속 통화를 했습니다. 약간 짜증스러워진 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아이들 장난친다고 잔소리하는 아줌마,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도 금방 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