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길을 떠난 시간을 찾아서
- 작성일
- 2001.01.26 20:52
- 등록자
- 정혜숙
- 조회수
- 917
라디오에서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시간은 훌쩍 길을 떠나자고 하네. 이쯤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을거야. '존대어로 이야길 해야 할까? 방송용어로 말이야. 아니야! 평소대로 다정한 목소리가 좋다!'로 결론을 내렸어. 시간은, 십 육년의 시간을, 타임머신을 작동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그곳으로 나를 데불고 갔어.
훤칠한 외모에, 여기서 훤칠한은 얼굴 뿐 아니라 잘생긴 키가 그렇단다. 서울 말씨를 쓰고, 그 아이를 생각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물건이 키타야. 가수가 꿈이라고 했지. 가수가 되지 못하면 방송일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어. 그 아이가 입술을 동그랗게 오무리며 노래할 때는, 등뒤로 쏟아져 내리던 별빛이 아니여도 저절로 우리들의 눈망울은 초롱초롱 했단다. 여기에서 우리들이란, 유치원 교사를 하던 여자 아이, 작가가 장래희망이던 아이, 가수가 꿈이였던 너, 행복한 아빠가 되고프다던 또 한명의 남자 아이. 이렇게 우리는 넷이였지. 그해 겨울에는 유난히도 불쌍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았던 것 같아. 그 아이가 자신과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단체에서 부탁한, 일명 '불우이웃돕기 일일 찻집'에서 우리는 무보수의 아마추어 가수였어. 퀴퀴한 냄새가 나던 지하 찻집에서, 그것도 이름도 없는 무명의 가수가 꾀많은 사람들 앞에서 능청을 떨면서 노래 부르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였지. 그곳에서는 네가 늘 우리들의 대장이였어. 아참! '00가요제'에서 입상을 한 경력을 가진 넌, 무명은 아니였지. 우리 셋이 너 덕분에 무대경험을 한 셈이였다고 해야 맞는 말이 되겠구나. 그때에 우리가 즐겨 불렀던 노래의 주제는 대체로 '사랑'이었던 것 같아. 유심초, 해바라기 등 통키타 가수들의 노래에다 올드팝에서는 발음하기가 쉬운 곡이 대부분이었지.
'사랑은 한순간의 꿈이라고 남들은 웃으면서 말하지만....'이라는 노래가사가 지금 막 떠오르는구나. 이 노래는 너와 내가 늦게나마 새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친구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축가를 불렀던 곡이지. 기억나니? 가장 최근에 너와 내가 듀엣으로 불렀던 노래야.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시간 속에서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단다. 아름다운 느낌으로 말이야. 그리고 내가 어려운 일이 닥쳐서 너에게삼년 동안 연락을 뚝 끊고 살았던 시간. 우연히 방송에서 너를 다시 찾게 되었고, 너에게 떨리는 가슴으로 다시 연락을 했지. 오랜 시간에서 오는 어색함을 너의 웃음소리에 반갑다는 네 말에서 눈녹듯 사르르 녹아 내렸지. 너무 고마웠어. 그 때는.
16년전의 우리의 꿈은? 현재의 너와 나는? 연락처를 알지 못하는 두 친구.... 오늘, 라디오에서 너의 목소리를 듣고는 갑자기 너에게 편지를 쓰고싶은 충동을 느꼈단다. 매일매일 너의 목소릴 들으며 짧게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나를 다시 되돌아 보는 시간이 되었단다. 추억이 잣대가 되어- 새해에는 다른 일 다 제치더라도 꼭 몸건강하길 바랄게.
2001년 설날에 친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