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수면위로 떨어지는 햇살만큼이나 보고 싶은 인경아
- 작성일
- 2001.04.03 11:32
- 등록자
- 김외자
- 조회수
- 841
안녕하세요. 저는 16년전 이땅을 떠나 먼 남쪽나라 호주로 이민가 버린 친구 인경이에게 이편지를 띄우려고 합니다. 비록 귀로 듣진 못하겠지만 어쩜 마음으론 가슴 아리게 느낄지도 몰라요. 제 마음을....
인경아. 거실 작은 탁자앞에 앉아 너가 유난히도 싫어하는 커피+설탕+프림을 듬뿍듬뿍 두스푼씩 넣은 진한 커피를 니가 좋아하는 와인색 잔에다 타서 한모금 마시고 바라다본 바깥 풍경은 햇살을 가득 머금어 눈이 시리도록 반짝이는 바다와 연분홍 꽃송이를 가지가 늘어지게 달고 있는 벚꽃 나무들. 그속으로 노란 유치원 복을 입은 꼬마들이 줄을 지어 걸어가고 있다.
그것을 보니 20년전 너를 처음 만나던 때가 생각이 난다. 감색 교복을 입고,( 아니 우리둘처럼 몸매가 글래머(?)인 아이들은 허리를 유럽 여자들처럼 쫙 졸라맨 폼이 그리 보기 좋진 않았을거야.)처음 보는 낯선 아이들 틈에서 화단에 줄지어 있던 목련꽃봉오리처럼 수줍어 했었던 인경이 너. 둥근 뿔테 안경과 꼭 다문 입술,새초롬하던 그 표정,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교실에서 나보다 한칸 앞에 앉았던 너가 나에게 던진 첫마디는 "노래 가르쳐 줄까?"였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게 너는 유창한 솜씨로"The little bird"를 불러 주었지. 나는 잘 모르는 팝송을 그렇게 잘 부르는 너를 보며 가사 적힌 쪽지를 밤새워 펼쳐 들고 외우던 생각이 난다.
죽도 시장 떡볶이 골목으로,송도 바닷가로,탑산으로 참 많이도 다녔었지? 얼마나 다녔으면 너 3년전 한국에 왔을때 우리가 단골이었던 분식집 아줌마가 우리를 기억하겠니? 그때 찍은 분식집 주인아줌라랑 같이 찍은 사진은 참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웃기더라.
너는 유달리 머리에 새치가 많아서 노란색으로 염색을 해 다니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눈물로 신세타령겸 용서를 빌기도 했고, 너 2학년때 국사 선생님에게 반해서 시험 기간내내 국사 공부만 해대더니 결국은 국사는 100점에 다른 과목은 아마도......(공개하면 너 나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지?)
학교운동장 벤취에 앉아서 너는 노래를 부르고 나는 어설픈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고 안보는 척하면서 옆 남자 고등학교로 곁눈질 한번 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날들인데 가슴이 시리도록 아픈 까닭은 왜일까?
며칠전에는 너를 안다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 신나게 너 이야기를 했다. 집에 돌아와 쇼파에 앉으니 너 생각에 눈물이 나더라. 너 이민간다고 했을때 조금더 한국에서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지 못한것에 미안했었어. 이젠 두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여행사를 운영하는 남편의 아름다운 아내로 잘 살아가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 그래도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인경아. 이젠 너를 보고 싶은 마음은 접어두고 법정 스님의 글 한구절 적어 볼게.
그리고 오늘은 너가 나에게 가르쳐 준 그 노래를 들으며 우리의 아름답던 그 시간들을 한번 되새겨 볼까해
안녕!!!
"혹시 이런 경험은 없는가?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호박을 보았을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혹은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때 그 아름다움의 설레임을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렴 함께 할 수 있어 좋은 친구일 것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이다.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난 항상 인경이 너에게 이런 친구였음 싶다.
2001. 4. 3. 외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