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임신을 축하하며
- 작성일
- 2001.04.19 10:51
- 등록자
- 김은아
- 조회수
- 846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기에 이렇게 글을 씁니다..
어제는 친정어머님께서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더군요..
"은아야. 내다. 살다보니 이렇게 좋은일이 내게도 생기는 구나."
하시며 전화선을 통해서 울먹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정말 좋은 일이 생겼구나 싶어
"어머니 무슨 좋은일인지 빨리 말씀해 주세요."라고 했더니
"민아가 임신을 했단다. 이제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데이."
친정어머니의 그 한마디에 저도 기쁨의 소리를 질렀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큰언니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어시는 나의 어머니와의 통화를 끝내고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람이 기뻐도 눈물이 난다는 것을 난생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두아들을 낳았을 때 보다 더 기뻤습니다.
민아언니는 언제나 제게 큰 늘 이었고 제가 본받고 싶은 나의 소중한 둘째언니입니다.
1남5여의 둘째딸로 태어나 88올림픽이 열리던해 캐나다로 이민을 간 큰언니를 대신하여 저희다섯 동생 모두의 학비를 보태고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묵묵히 해낸 언니입니다.
저희집은 경주시 강동면에서도 십리이상을 더 가야 하는 시골동네 였기에 농사일과 밭일 또한 겸하며 공부를 해야 했어요.
중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새벽5시부터 아침을 먹고 십리 길을 걸어 강동에 나가 포항가는 차를 타고 학교에 가야만 하는 언니가 저는 늘 부러웠습니다.
갈래머리 예쁘게 하고 그 세찬 새벽 바람에 십리를 걸어가는 언니에게 철없는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언니야는 좋겠다. 맨날 버스타고"
그렇게 말하면 "그래...너가 중학교 다닐때는 우리 마을까지 버스가 들어 왔음 좋겠구나."
하며 언제나 다정했던 언니.
30촉 백열등 아래서 공부를 하다가도 어머니가 들에서 돌아오시면 따뜻한 밥을 드려야 한다며 저 멀리 어머니의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부엌에 들어가 밥상을 차렸던 착한 언니.
단 한번도 전교일등을 놓치지 않았었고, 주산 부기 타자를 배우기 위해 학원을 다니다 밤열시가 넘어서도 십리길 밤길을 꿋꿋이 걸어다니던 나의 언니.
언제나 언니가 내 앞에 있었기에 힘든 것도 모르고 집이 얼마나 가난한지도 모르며 철없이 욕심만 차리던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3년 만에 집안일과 언니를 뒤로 한채 지금의 남편을 만나 먼저 결혼해 버렸어요.
세 살터울인 우리 언니에게 그리고 학비를 도와주어야할 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없이 내 행복만 찾았던 나에 비해 언니는 은행을 다니며 야간대학교를 다니며 부모님 대신 나머지 동생 모두를 공부시키고 나중에 시골집을 새로 지을 때 몇천만원의 큰 돈 까지 내놓았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언제나 민아언니에게 "민아 너하나가 열아들 부럽지 않데이"하시며 언제나 언니를 믿었습니다.
고생을 해도 해 맑던 언니는 119상황실에서 격일제 근무를 하던 형부를 만나 결혼을 하던 그해에 허리에 약간의 요통이 있다며 병원에 갔다 뼈속에 종양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저는 그제서야 언니의 소중함을 깨닫고 언니에게 좋은동생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암초기라서 쉽게 고칠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며 친정부모님께는 절대로 알리지 말라며 "나는 견딜 수 있다"고 말 하는 언니를 보며 언니를 위해서라면 평생 무슨일이든지 하겠다고 저는 마음 먹었습니다.
언니는 근 1년을 목발을 짚고 항암치료도 열심히 받아 암을 이기어 내었습니다.
그 힘든 항암치료를 잘 이겨내고 아프다는 말한마디 하지 않던 언니에게 답답해서 제가 말했죠...
"언니야..제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라. 보는 내 속이 더 탄다"라고 했더니
"아프다고 해서 운다고 해서 달라질 상황이라면 울고 아프다고 하겠지만 그렇치 않기에 감사히 받아 들이고 노력하면 될거야.."하더군요.
다행히 재발가능성도 없다기에 지금은 안심하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친정에 갈 때 마다 멀리서 동생이 온다며 두 아이들의 옷가지 하나 하나 챙겨 오던 언니에게 아이가 없다는 것이 저는 늘 미안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보며 "혁이와 범이가 건강하게 잘자라서 난 너무 좋아" 하며 아이들 장난감을 사주던 언니에게 아이가 생기길 저는 간절히 기도 했습니다.
병원의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를 가져도 된다는 말씀을 한지 2년이나 지났고 언니의 나이가 서른다섯인데 아이가 생기지 않아 제 마음 또한 언제나 안절부절이었습니다.
그런 우리와는 달리 "내 걱정하지마 하늘이 주실 때 되면 알아서 모두 주시겠지" 하며 느긋한 언니..
아카시아 꽃향기를 좋아하는 나의 언니의 임신소식을 듣고 이런저런 생각에 어젯밤에는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가슴벅참을..이 기쁨을 세상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힘이 들어도 아무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모든 상황을 받아드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