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주는 작은 선물
- 작성일
- 2001.06.01 11:12
- 등록자
- 엄진희
- 조회수
- 791
사랑하는 딸 민지에게
네가 벌써 초등학교 4학년. 너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1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구나. 항상 너에게 잔소리만 하는 못된 엄마가 너에게 주는 작은 선물로 편지를 쓴다. 이제 네가 크니까 친구 같기도 하고 같은 여자로서 일체감을 느낄 때가 생기더구나. 하지만 이 엄마는 아직도 너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 욕심이 앞선단다. 오늘은 엄마라기보다 같은 여자의 길을 가는 너에게 좋은 책을 권하고 싶어서 펜을 들었어.
얼마 전 서점에 가서 엄마의 강요로 할 수 없이 샀던 책 기억나니?
"닭이 왜 이렇게 못 생겼어? 통닭 만들어도 먹을 게 없겠네."
하고 표지를 보며 투덜거리던 책 말이야. 네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사기 위해 억지로 덤처럼 사야했던 책이어서 일까? 넌 그 책을 책꽂이에 모셔두고만 있잖아. 엄마 친구의 딸이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하기에 너도 그 감동을 느끼라고 사 주었는데 넌 빽빽한 글씨에 놀라더니 읽기를 미루기만 해서 엄마가 그 책을 읽어보았단다. 너에게 이야기라도 해 주기 위해서였지.
동화라는 선입견으로 이 책을 처음 대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소설보다도 강한 느낌으로 마음에 남는구나. 이 책은 어린이들은 어린이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각자의 눈높이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어. 네가 자라면서 두고두고 읽으면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달라질 책이야. 이 시대를 살아갈 여자의 눈으로 보면 더 느끼는 게 많을 책, 그래서 너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더구나. 엄마가 느낀 감동을 너에게 다 전해줄 수가 없는, 읽어봐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란다.
알을 품어 병아리를 탄생시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양계장을 뛰쳐나온 잎싹이를 보면서 현실에 연연하며 살아온 엄마는 부러움을 느꼈단다. 잎싹이의 행동은 늘 변화를 꿈꾸면서도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린 이 엄마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더구나. 민지야, 이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단다. 물론 네가 커서 사회 생활을 할 때는 많이 변화하겠지만 어느 정도의 한계는 남아 있을 거란다. 시련이 닥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지. 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이야말로 진짜 가치 있는 삶이란다. 시련이 닥쳐도 자신의 꿈을 왜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이 책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을 거야. 엄마는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짓는 잎싹이의 행동을 잊을 수가 없어. 스스로에게 존재의 가치를 부여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모진 시련을 견뎌내는 잎싹의 용기 있는 행동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너도 잎싹이처럼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강한 의지를 지닌 사람으로 컸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더구나. 네가 이 땅의 여자로 살아가면서 겪어야할 어려움을 이 엄마는 알고 있기에 너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 자신이 낳은 알은 아니지만 지극 정성으로 키우는 잎싹이의 모습을 보면서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생각났어. 엄마이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지. 너는 커서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 키워 봐야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지금 읽더라도 여자에게는 타고난 모성이 있기에 감각적으로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거야. 맨 마지막의 장면은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머리 속을 맴돈단다. 잎싹이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족제비에게 자기의 목숨을 내어줄 때는 가슴이 싸해 졌어. 말로 표현 안 되는 묘한 감정이었지.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장면이었단다. 길들여진 양계장의 암탉으로 태어났지만 결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잎싹은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느끼면서 죽어갔지. 잎싹은 모습은 사라졌지만 날고 싶다는 또 다른 꿈을 이루게 된 거야. 어쩌면 너는 잎싹이가 현실에서 날아보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것에 반감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읽어보면 잎싹이 왜 그렇게 죽어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민지야,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란다. 네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할 시기에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좋을 책이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읽어보면 나름대로 느끼는 게 많을 책이니 꼭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어쩌면 뻔한 주제의 이야기라 같은 주제의 다른 이야기와 별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매력 있는 이야기니까 꼭 읽어보렴. 갇히고 찌들린 너의 마음이 환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거야. 민지는 책 읽는 모습이 가장 예쁘단다.
2001년 변덕스런 날씨로 고생한 날.
피곤을 핑계로 텔레비전만 보는 민지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엄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