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띄우는 사과편지
- 작성일
- 2001.06.06 10:36
- 등록자
- 남옥희
- 조회수
- 731
아버지,
어제도, 오늘도,내일도 언제든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데 유독 오늘 그것도 유월 육일에 당신을 부르고 싶은 마음이 사무칩니다.
그것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번도 당신께 제 잘못을 말씀드리지 못한 까닭입니다. 늘 마음의 짐처럼 남아있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한 쪽 눈을 잃으신 아버지를 어릴적 나는 부끄러워했습니다.주무실 때도 눈을 뜨고 주무시고,술을 드시고 눈물을 흘리실 때도 하얗게 떠 있는 눈이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한번씩 개안을 꺼내어 닦으시는 모습도 싫었습니다.
그것 보다도 더 싫었던 것은 6월이면 늘 전교생들이 다 보는 가운데 교단에 나가 학용품을 받던 것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6월이면 '원호대상자','보훈 대상자'로 불리워지던 내가 싫어 집에 와서는 '아버지가 왜 나를 부끄럽게 만드냐'며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내내 저는 유월이 되면 부끄러워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사회에 눈을 뜨고 당신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당신은 세상을 버리고 말으셨지요.
아버지,
당신이 계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을 앞에 놓고 외할아버지에 대해 떳떳이 이야기해줍니다.내 마음과는 다르게 아들은 오직 할아버지의 안 보이는 눈이 어땠는지만 궁금한가 봅니다.
아버지,
어리석었던 딸을 용서하세요.지금 당신이 안 계신 뒤에야 당신께 제 잘못을 비는 딸을 용서하세요. 아버지께서 지키셨던 이 나라! 열심히 살면서 사랑할 게요.
공일이팔구칠 이것이 아버지의 보훈 번호이셨지요.서른 다섯이 된 지금도 이 숫자를 잊지 않고 있네요.
아버지,
생전 당신이 좋아하시던 꽃을 들고 당신을 뵈러갈게요.
사랑하는 딸 올림.
경희씨,용수씨!
저는 요즘 좋은 친구를 하나 만든 것 같습니다. 방송을 늘 듣지는 못하지만 즐겨 애청하고 있습니다.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또 내 속내를 들어 주는 친구가 있는 듯합니다.
더운 날씨에도 수고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