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못다한 감사의 마음
- 작성일
- 2001.06.14 12:17
- 등록자
- 김미영
- 조회수
- 708
아버님 편안히 잘 지내시는지요?
아버님이 예뻐하시던 며느립니다
진작에 편지를 올렸어야 했는데 너무 늦어 답장을 받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결혼한 지도 어언 4년 처음 인사 드리러 갔던
때가 생각납니다 대구와 포항을 서로 오가며 데이트를
하던 어느 날 별 생각없이 오빠를 따라 나섰다가 얼떨결에 장차 시댁에 첫 인사를 가게 되었죠
시골 어른 그것도 양반가문이시라 여자는 다소곳하게 치마를 입고 가방도 점잖게 손에 들고 다니는 걸 좋아하시는데 그것도 모른채 저의 옷차림은 바지를 입고
조그만 가방을 어깨에 메고 신발은 앵글부츠 별로 탐탁치 않으셨겠죠
결혼하고 1년 정도는 맞벌이 하고 직장을 그만두고는
임신하고, 순호 낳고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동안 시댁에 자주 찾아 뵙지 못했습니다 멀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님께서는 늘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쉽게 잊으며 살았습니다. 어쩌다 찾아뵈면 "우리 식구 다 모였다"고 눈물을 비치시던 아버님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저만 보시면 그저 "허 허" 웃으시며 나무에 달려있는 싱싱한 자두, 복숭아를
캄캄한 밤에도 손수 따다 며느리 손에 쥐어주시던 아버님, 임신초기 추석명절엔 며느리 힘들까봐 설거지도
못하게 하시던 아버님
남에게 싫은 소리 안 하시고 언제나 정이 많으시던
아버님, 당신은 고생고생하며 지금까지 사셨지만 자식에게만은 그 되물림을 하실 수 없다며 언제나 자식들이 잘 살기만을 걱정하시던 아버님 무척 그립습니다
약주를 좋아하셔서 제대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 기억도 없습니다. 언제나 며느리가 한 잔 올리는 술에 "허허허" 기분이 좋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기다리시던 손주 낳았다는 소식에 먼 길 마다않고 한걸음에 달려 오신 아버님, 그렇게 이쁜 손주
백일도 못 보시고 첫 돌도 못 보시고 가셨으니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조금만 빨리 우리 순호를 낳았으면' 하는 후회도 해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아버님의 인자하신 모습 꼭 빼닮은 손주 첫 돌잔치도
무사히 자 치렀구요 지금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아버님 돌아가신 지도 6개월째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
시골에 가면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서 "허허" 웃으시며 저희들을 반겨주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머님 혼자 저희 집에 오시고 그 옆자리가 허전함을
느낄 때 다시 현실 속엔 아버님이 더 이상 존재하시지 않는다는 걸 절감합니다
자식이 효도를 다 할 때까지 부모님은 결코 기다려주시를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아버님 부디 몸도 마음도 편안히 쉬시길 바랍니다
어머님도 잘 모시구요 저희 식구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아버님께서도 지켜봐 주세요
-사랑하는 며느리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