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추억
- 작성일
- 2001.07.31 23:53
- 등록자
- 송경미
- 조회수
- 721
안녕하세요? 시원한 수박화채를 해먹기위해 수박한덩어리를 사서 품에 안고 오면서 여고 1학년 여름방학때 친구들과 모여 수박서리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가만 있어도 땀이 주르르르흐르던 여름날... 친구들 넷이서 모여 모사를 꾸몄죠.. " 야 오늘밤에 우리 수박서리 하러 가자!"
누군가 한명이 얘기를 했지만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죠.
밤 10시에 마을 입구에 모인 영숙이. 명순이. 지영이. 그리고 나는 넷이서 의기양양하게 수박밭을 향해 갔습니다. 그러나 수박밭은 마을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고 작은 산을 하나 넘어야하는 곳에 있어서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갈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낮에는 그렇게 햇빛이 강하더니 밤이 되니까 하늘은 먹구름이 끼었고. 우르릉쾅쾅 천둥까지 치고 있던 여름날밤. 네명의 여전사는 산을 넘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산짐슴이 나올것같아 가슴은 쿵쾅쿵쾅 뛰었고, 엊그제 상여가 나간 흔적으로 나풀나풀 하얀 종이가 나뭇가지에 걸려있어 섬뜩했지만 아무도 뒤돌아가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수박밭에 도착했지만 원두막에 있을 주인아저씨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린 원두막 반대쪽에서 수박서리를 시작했으니까요.
우린 엉금엉금 기어 수박밭을 헤매기 시작했고 난 손으로 만져 큼직한놈 하나를 따들고 밭가에로 나왔습니다. 잠시후에 지영이랑 영숙이도 수박한덩이씩을 들고 끙끙거리며 나왔습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명순이만 소식이 없었어요. 우린 이름을 부를수도 없어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죠. 한참후에 우리쪽으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린 아주 나즈막한 합창으로" 명순이냐? 왜 인제 오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명순이가 아니었습니다. "큰 놈 따올라고 늦었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수박밭 주인아저씨였죠. 우린 화들짝 놀라서 36계 줄행랑을 쳤습니다. 명순이는 엉엉 울었지만 우린 비겁하게도 도망을 쳤죠. 도망치다가 뒤돌아서서 원두막쪽으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명순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야할 원두막쪽에서 아저씨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거 갖고 가서 친구들이랑 먹어라. 그리고 너희 부모님한테는 비밀로 해주마!"
명순이는 그틈에도 부모님이 아실까봐 아저씨한테 부탁을 한모양이었습니다.
우린 한숨을 푸욱 내쉰뒤 안심하고 명순이를 기다렸습니다. 아니 명순이가 가지고올 수박을 기다렸다고 해야 옳겠네요.
그날밤 우리들은 명순이가 들고온 수박을 팍 쪼개어 사각사각 맛있게 먹었습니다. 호호하하 하늘이 떠나가게 웃으면서 우리들의 수박서리는 그렇게 끝이 났죠. 얄개시절의 확실한 추억하나를 남겨준 수박서리였습니다.
지금은 그런 수박서리했다간 바로 쇠고랑을 찬다지만 그때만해도 하나의 장난으로 여겨졌던 일이었죠. 그때 원두막아저씨에게 명순이가 어떻게 걸렸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명순이가 엉금엉금 아무리 기어가도 큰 수박덩어리가 안잡혀서 계속갔는데 원두막에서 잠자던 아저씨가 오줌이 마려워서 일어나 지퍼를 내리려는 순간 명순이가 발아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명순이가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한 이야기니까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지만요... 감사합니다.
제가 어떻게 여기를 노크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바로 오빠가 포항으로 이사를 했어요. 발령받아 갔는데 여름 휴가를 오빠댁에서 보내면서 들었죠. 재밌더군요. 두분의 진행솜씨가 돋보였다고나 할까요?
글고... 상품이 하두 빵빵해서 올케한테 그랬죠. 나 집에 가면 제일 먼저 할일이 포항의 즐오두에 편지쓰는일이고, 압력솥타가지고 남편의 현미밥할때 맛있게 지어주는 기쁨을 얻을것이라구요.
저. 정말 오빠댁으로 휴가가기를 잘했죠?
하지만 제가 더 다듬고 좋은 사연있으면 올려서 압력솥에 도전할게요. 기다려주세요.
참. 인터넷방송 잘 듣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