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남편에게
- 작성일
- 2001.08.21 09:42
- 등록자
- 서학자
- 조회수
- 707
안녕하세요
그렇게 무덥던 날씨는 사라지고 요즘은 낮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 여름이
한 풀 꺽인 것을 느끼게 하는군요. 이제 곧 가을이 오려는 느낌까지 듭니다.
어젯밤엔 제 신랑이 회사사람들과 함께 술을 한잔 마시고 들어왔습니다
밤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들어와선 미리 전화도 하지 않은 신랑에게 화가
나 있던 저에게 어깨를 툭툭 치며 미안하다, 사랑한다 하더니만 씻지도 않고
아이 옆으로 가 눕더니 바로 잠이 들어버리는 겁니다. 잠든 신랑의 양말과
겉옷을 벗기며 혼자서 씩씩거렸습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잔소리 좀
해야지 생각하며 잠자는 신랑의 얼굴을 보는데 얼마나 야위고 핼쓱해 졌는지
갑자기 눈물이 핑 돌더군요.
매일 매일을 딸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쳐 보겠다고 딸아이와 씨름하며 지내느라
요즘 신랑에게 많이 소홀 했었거든요. 옷걸이에 걸려고 든 바지의 주머니에서
남편의 지갑이 보이기에 열어 보았는데 5천 원이 들어있었습니다.
저는 신랑의 기가 죽을까 싶어 지갑에 2만원을 넣어두었습니다.
2만원을 넣다 보니 문득 3년 전 충청남도 서산에 살던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결혼 후 포항에서 살 것이다 생각했던 나의 바램은 꿈처럼 깨어지고 남편의
회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항을 떠나 낯선 서산에 자리를 잡았을 때, 저는
신랑이 출근하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 곳에서 참으로 외로워 했답니다.
특히 임신 후에는 모든 일에 짜증이 나고 친정부모님과 형제들, 친구들이
그리웠습니다.
임신4개월 되던 때 힘들어하는 저의 모습을 지켜보던 신랑은 집에 다녀
오라고 권하더군요. 몇 번 괜찮다고 우기던 저는 신랑의 말에 못 이기는 척
친정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가진 것 없이 결혼했던 때라 신랑에게 일주일에 용돈 2만원
이외에는 절대로 돈을 주지 않았었기 때문에 일주일동안 집을 비우리라 생각
하면서도 신랑에게 2만원만 주었습니다.
터미널까지 신랑이 바래다주며 몸조심해서 다녀오라고 이야기하고 돌아설 때
남편의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에 약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보고싶은 가족들을
생각하니 그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친정에 오니 얼마나 좋던지 신랑에게는 저녁에 한 번 밖에 전화를 하지 않게
되더군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매일같이 만났고 언니 집에도 놀러
갔었습니다. 5일째인가 서산의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10시가 넘었는데도 신랑이
전화를 받지 않아요
그때 신랑은 휴대폰도 없었거든요. 걱정이 되어 계속 전화를 했습니다.
11시 넘어서 신랑이 전화를 받더군요. 걱정도 되고 화도 나고 해서 어디 갔다
왔냐고 목소리 톤부터 올렸습니다
신랑이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더라구요. 저녁퇴근길에 회사 사람들 모두 회비를
모아 술을 먹자고 해 가지고 있던 돈 2만원을 내고 술을 한잔하고 보니 운전을
할 수가 없더래요
서산의 우리 집으로 오려면 차를 두 번 갈아타야 집으로 올 수 있는데 차안을
뒤져보니 동전 몇 개가 있어 차를 한번 타고 터미널까지 오긴 왔다는 거예요.
그리곤 그 다음엔 그냥 집으로 뛰었답니다 차로도 10분이 걸리는 길인데 걸으며,
뛰며 그렇게 해서 집으로 왔다는 거예요
저는 전화기를 붙잡고 엉엉 울었답니다.
신랑은 괜찮다고 했지만 저는 용돈이외의 비상금을 주지 않은 저의 철없음에
화가 났고 신랑이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며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그 다음날 저는 서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시장에서 신랑이 좋아하는 삼겹살과
소주를 사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신랑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저를
반기기에 다시 한번 더 울어버렸습니다. 결혼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신랑은 아무 불평 없이 일주일에 용돈 2만원씩 받아가고 있어요
그 돈으로 담배도 사고 가끔은 회사 사람들과 술도 한 잔씩 하고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케익도 사다주곤 한답니다.
오늘 아침은 신랑을 위해 해장국을 끊여 식탁에 내었더니 신랑은 멋쩍은 듯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회사 일이 힘들지만 나와 아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남편을 위해 두 분 파이팅좀
외쳐 주세요.
(우리 남편에게 좋은 선물을 하고 싶은데 롯데 상품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릴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