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시는 우리 시부모님....
- 작성일
- 2001.09.10 23:31
- 등록자
- 철없는 며느리가
- 조회수
- 769
안녕하세요
요즘 선선한 바람이 제법 불어서인지 벌써 가을이 온듯하네요.
저희 시댁은 경주시에 속해 있지만 시내에선 제법 떨어져 있어 오히려 영천쪽에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경주시 서면 아화리란 곳이랍니다.
지금 저희 시부모님께선 포도를 수확하느라 무척 바쁘십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에서 자란탓에 저는 시골의 농사일은 전혀 모르고 커서 주말에 한번씩 갈때마다 그저 식사챙겨드리는것과 조금씩 배운 솜씨로 포도를 다듬는게 고작이지요.
처음에 시집갈때만하더라도 농사를 지으시면 쌀농사만하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마늘농사(논,밭농사) 쌀농사(논농사) 고추농사(밭농사) 그것만 있나요
제법 큰 포도밭도 있고 잡다하게 콩밭주변에 있는 가지 오이 깻잎 호박 등등....
그 모든 일을 저희 시어머님과 시아버님 두분이서 다 하시니 주말에 한번씩 가서 도와드리는 저로서는 송구한 마음 이루 말할수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내리사랑은 얼마나 크신지 주말엔 내려오지 말고 푹 쉬어라하시며 못 오게 하시면서도 철마다 나는 햇과일이며 채소를 챙겨 새벽같이 버스를 타고 오셔서
"할매가 우리 손녀 보러 왔재." 하시며 전해주곤 하신답니다..
저희 시부모님께선 지금 포도수확철이라 매일같이 포도밭에서 숙식을 하세요.
포도밭에가면 천막아래 이불이며 휴대용버너. 라면 한박스 나무젓가락 등등 정말 보기 딱할 정도에요.
그렇게 고생을 하셨건만 올해는 워낙 포도가 풍년이라 고생한 만큼 가격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속이 많이 상해하세요.
그래서 장날만 되면 도회지 시장에 나오십니다.
청과상에 내면 한상자에 만원도 채 못 받는지라 시장에서 조금씩 파는게 더 돈이 된다하시며 장날마다 식사도 못하신채 새벽같이 나오셔서 가지고 나오신거 모두 다 파셔야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저번에 한번 애기를 업고 시장에 가봤더니 저희 어머님같은 분이 많이 계시더라구요.
장날마다 보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같은 물건을 놓고 장사를 해도 벗들처럼 아주 절친하게 지내시는걸 보니 참 보기 좋더군요.
그리구요 다 파시지 못하셨을땐 다른 물건을 가지고 나오신 분과 바꾸셔서 어떨때는 포도가 고등어나 오뎅(어묵) 술떡 등등으로 변해서 오곤 하지요.
그런데 간혹 가다가 값이 비싸다 물건상태가 별로다하며 마구 깍아달라고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어떨땐 정말 얄미울때도 있더라구요.
이 기회에 그런 분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말은요.
연세드신분들 그렇게 바가지 씌우시는분들 한분도 안계시구요 정말 받아야 되는 값 만큼만 부르니까 부탁이니 이제부턴 그러지 않으셨으면 해요.
어쨌건 이번 포도수확이 끝나면 또 벼농사를 마무리짓는 추수철이 기다리고 있어요.
추수가 끝나면 우리 어머니 또
"매상 대러 댕겨오꾸마"
하시며 매일같이 농협창고로 출근하실텐데 얼마전 뉴스를 보니 이번 정부에서 이번 추곡수매가를 동결한다고 하더라구요.
어머님 한숨 쉬시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그렇게 일년내내 아니 몇십년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매번 그장단이 그장단이니 도대체 우리 어머님 언제쯤 허리 펴고 사실지.....
일한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얻을수 있는 그런 세상이 어서 왔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편지를 써봤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