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생일 선물
- 작성일
- 2001.10.04 23:22
- 등록자
- 박춘억
- 조회수
- 856
학창 시절 에는 추석이 참 미웠다
우리 고유의 명절인 한가위라 기쁜 날 인데도 유독 내가 추석이 미운것은 추석 삼일 뒤가 내 생일 인데 종가집 맏며느리인 어머니는 추석을 지내고 나면 심한 몸살로 일주일쯤은 앓아 누우신다
그러니 내 생일 이라고 해도 별 뽀족한 수 없이 그냥 먹다 남은 제사 음식으로 대충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얼버무려 졌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좋은 것은 아내가 무슨 날 이란 날은 칼같이 다 챙겨 준다
결혼 기념일과 내 생일은 물론 회사 입사 몇주년.심지어 연애 시절 처음 만났던 날. ..잘 챙겨 주는 아내 덕에 오늘 아침은 조개 미역국에 윤기 나는 찰밥을 먹었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아내와 식탁에 앉아 둘 만이 오붓 하게 서른 일곱번째 생일 밥을 먹었다
"오늘 당신 생일 이지 ,,축하해,,쪽~~~오늘은 내가 쏜다 .대충 집안 정리 하고 아이들이 오기 전에 시내에 나가서 영화 한프로 땡기고 맛있는 점심 먹자.."
그렇게 해서 둘이 시내에 나가는데 자꾸 아내는 내 팔짱을 끼고 옆에 붙자 지나가는 행인들 보기가 조금은 민망 해서 좀 떨어져 가자고 하니 아내는 뽀루퉁 해졌다
삐짐이 아내를 다독 거려 겨우 극장 앞에 가니 시간은 11시
영화 상영은 첫 프로가 10시 30분..1시 10분.. 유치원에 간 아이들이 오기 전에 영화를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 가야 하니 시간은 조금 지났으나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들어 갔다
그런데 매표소엔 사람이 한명도 없고 주인장 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하시는 말씀..
"어제는 명절 끝이라서 사람들이 그래도 더러 왔는데 오늘은 두 분이 첫 손님 이네요 ..손님이 한명도 없어서 시간은 지났지만 아직 영화를 상영 안했는데..두 분께서 영화를 보시겠다면 지금 영상기를 돌릴께요"
연애 시절 영화를 좋아해서 아내와 울산으로 부산으로 개봉관을 많이도 찾아 가서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 이었다
좌석에 앉으니 그때서야 2층 에선 부스럭 소리와 함께 필림을 돌리는 소리가 났고 이내 컴컴 하게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 되었다
김성수 감독의 "무사"는
명 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간첩 혐의로 몰려 사막에 고립된 고려의 무사들이 몽고군에게 납치된 부용 공주를 끝까지 지키는 무협 액션 이야기 이다
광활한 대륙의 끝에서 피할수 없는 전투를 하면서 끝까지 공주를 지키는 여솔 (정우성)의 목숨 건 사랑이 정말 감동적 이다
그러나 스크린 대부분이 피 비린내가 날 정도로 끔찍한 장면이 많이 나왔고 그럴때 마다 아내는 "엄마야~"하면서 내 품에 안겼다
다른 사람들 눈치 때문에 팔짱도 못 끼게 한 것이 미안해서 컴컴한 극장 안에서는 아내를 꼭 껴안고 영화를 보았다
아~ 그 맛도 오징어 뒷 다리 씹는 맛 처럼 좋았다
마지막으로 공주를 구하고 여솔이 검 붉은 피를 토하면서 죽었고 한명 남은 진립 (안성기 )이 꿈에도 그리던 고려로 돌아 가면서 끝났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안이 환해져서 뒤돌아 보니 아니~ 세상에 극장 안에는 우리 둘 뿐 이었다
좌석이 182개나 되는 극장이 우리 부부 둘을 위해서 영화가 상영이 된것이다
"자기야..내가 아침에 쏜다고 했재..오늘 내가 극장 전세 냈다 당신 생일을 위해서 .."
아내는 영화 보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영화가 상영 되었다는 사실에 더 흥분을 했고 감동까지 했다
극장을 나오면서 매표소에 계신 아저씨께 감사 인사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밀면 집으로 갔다
금방 삶은 면에 갖은 양념을 한 비빔 밀면이 너무나 맛갈스러웠다
조금 늦은 점심 식사에 아내는 호들갑을 떨면서 밀면을 먹었고 입가에는 양념이 빨갛게 묻었다
"당신 입을 보니 "무사'에 나왔던 그 몽고 여자 같다.."
"엄마야`......."
몽고 여자가 칼에 맞아 피 흘리고 쓰러졌던 그 장면을 괜히 방정 맞게 이야기 해서 아내는 밀면을 먹다 말고 젖가락을 떨어 뜨렸고 그 바람에 양념이 튀어서 내 옷과 얼굴에 빨갛게 묻었다
어쨌던 밀면을 먹기 전 까진 분위기 좋은 생일 선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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