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의 사랑
- 작성일
- 2001.10.09 21:31
- 등록자
- 권정은
- 조회수
- 822
안녕하세요? 두분..
열어놓은 창문사이로 빗소리가 주룩주룩 들리고..조금은 쌀쌀한 기운을 감수해가며 이 가을비가 주는 정취에 전 지금 취해 있답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한층 깊어져 있겠죠..가을이
사년전 가을..
알록달록 물든 단풍들이 하나둘 힘없이 떨어져 발끝에서 뒹굴고 무의식적으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가을의 그 끝자락에서 저와 신랑은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남편의 직업은 경찰관이였습니다.
세번이나 만날 약속을 정하고도 누가 방해라도 한듯 번번히 어긋나서 인연이 아닌가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죠..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친구의 간곡한(?)부탁인지 협박인지에 못이겨 전 약속장소로 향했고..
왠지 딱딱하고 약간은 경직되어 있을 것 같은 인상을 상상했던 전 의외로 부드럽고 자상해보이는 그의 태도에 호감을 느꼈습니다...
친구를 향했던 매서운 눈빛은 어느새 상냥한 눈길로 바뀌었고..그 날 이후로 붙여진 제 별명이 바로 내숭쟁이랍니다..
몇번의 만남을 거듭하며 저흰 의기투합했죠..
더 이상의 만남은 시간낭비일뿐이라구요(ㅎㅎ)
그래서 어른들께 인사가기로 했고,장차 시부모님을 뵙는다는 생각에 전 많이 긴장했지만,남편의 말에 조금은 마음을 가라앉힐수 있었습니다.
남편왈..
세상 어느 부모님보다 자상하고 인자하시니 걱정말라구요..자기를 보면 알수 있대나..어쨌대나..
여하튼 그 말에 힘을 얻은 전 용기를 내었고..친정아버지가 안계셨던 터라..시아버님의 사랑만은 꼭 받고 말것이라는 다짐또한 강하게 했습니다..
저희 시댁은 안동이였고,일년이면 족히 열번은 될것같은 제사를 지내는 종가집입니다.
장차 며느리 감이 인사온다고 동네방송이라도 하신듯 일가친척어른들께선 다 모여 계셨고,그 모습에 일찌감치 주눅이 든 전 온몸에 힘을 주고 있는 노력이 무색하리만치 덜덜 떨었었죠..
더욱이 자상하다고 철썩같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아버님의 무서운 인상에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맏며느리는 아니지만 일 많은 종가집에 들어와서 잘 할수 있겠느냐는 아버님의 단호하신 물음에 전 그저 모기만한 소리로 네..하고 대답할수밖에 없었죠..
혼자 객지에서 생활하는 아들이 안됐는지 인사간지 채 한달도 안된 가을의 끝자락에 우린 결혼을 했고,
결혼 한 후에도 아버님의 완고하신 모습은 절 충분히 주눅들게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댁가는게 마냥 어려웠고, 어떻게 하면 시댁가는 횟수를 한번이라도 줄여볼까 머리를 굴려야하는 얄미운 며느리가 되어갈 즈음...
그모든 갈등이 한번에 해소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남편과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 자동응답기에 불이 깜빡깜빡하는 걸 보고 무심히 동작 버튼을 눌렀는데..거기에서 들려오는 아버님의 음성..
"여보시오,내말 들리는교..
아~~여기는 시댁인데요..허참,,시아버지가 전화했다고 전해주이소마....잘 있는겨....!@#$%^&*%$#"
무슨소린가하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던 남편과 전 곧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답니다..
그런데..정말 희한한 일은요..
그 일이 있은후 마냥 무섭고 어렵기만 하던 시아버님이 하나도 무섭거나 어렵지 않은거 있죠..
며칠후 아버님을 찾아뵈었는데...쑥스러우셨나봐요
살풋 웃으시더니..
"내..그때 술 한잔 했었다..아가야"
하시는 겁니다..
저희 아버님 너무 귀엽죠??
결혼전 꿈꾸던 시아버님의 사랑..지금은 듬뿍 받으면서 살고 있답니다..
며느리 생일때마다 잊지 않고 챙겨주시는 선물..
매년 바뀌지도 않는 가계부선물이지만 살뜰히 가정 꾸리라는 부모님의 마음이 담겨있어 잘 쓰고 있구요..
언젠가는 제가 키우다 죽기직전에 옮겨간 벤자민 화분을 잘 가꾸셔서 다시 예쁘게 리본포장까지 하셔서 저에게 선물해 주시더군요..
식물도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가꿔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요..
아버님의 사랑에 보답하려면 빨리 예쁜 손주를 안겨 드려야 하는데..전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이 다칠까봐 오히려 절 위로해 주시는 우리 아버님...
언젠간은 떡두꺼비같은 손주 안겨드릴테니..건강하시라고...전해주실래요?
그리고..아버님..
정말정말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말)
월간에 채택되는 행운이 주어져 부모님께..압력밥솥을 꼭 선물하고 싶은게 저의 소망입니다.
칠전팔기 정신으로 계속 도전해서 사랑받는 며느리로 거듭날겁니다..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