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처녀 한국아줌마 되기까지
- 작성일
- 2001.10.11 02:53
- 등록자
- 김영옥
- 조회수
- 889
오늘밤은 지금껏 꼭꼭 제 가슴에 숨겨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그리고 그리운 나의 어머니가 보고 싶어 지금 울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어 보다 중국어를 더 잘 하는 중국 길림성 연길시 북대가가 고향인 한족인 중국 처녀였습니다.
지금은 한국으로 시집을 와서 한국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누구라도 나의 비밀을 알까봐 고향을 강원도라고 속였고.
말 한마디를 할 때도 세 번 네 번을 생각한 후 문장이 맞나.. 이 표현법이 맞을까?
망설이다 그제서야 입을 열 수 있는 서른의 젊은 새댁입니다.
제 고향은 지금쯤이면 벌써 추워서 솜 옷을 입고 또 그 안에 몇 벌의 내복을 입어야 합니다...
물이 맑아서 목이 마르면 아무데서나 흐르는 냇물을 떠 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확트인 대지..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해 지는 내 고향 연길..
기차가 통행의 수단입니다.
기차를 타면 연길역을 거쳐 안도역 그리고 도나역..
창밖에는 넓은 초원으로 지평선만 보이는 내 고향
그 곳에는 어머니만 홀로 계십니다..
저는 이곳으로 오기 전에 치가 떨리게 힘들고 가난한 생활을 했답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를 했었고,
연길에 있는 사범 부속학교 소학교를 졸업후
안도시 위생 학교를 졸업한 후 보건병원에서 오랫동안 간호원으로 근무중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문화제 재 보수 공사의 목수로서 나무를 구하러 제가 살던 길림성 연길로 출장을 왔답니다..
남편은 출장을 올 때 한국 날씨를 생각하고 내복하나에 면바지 몇 벌만 가지고 출장을 왔다 덜커덕 추운 연길 바람에 심한 독감에 걸리게 되어 제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말이 없는 한국인 남자를 저는 친절히 간호 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많은 책을 읽었고 또 한국에 관심이 많았었습니다.
아주 많이 정확하진 않았지만 저는 표준어 적인 한국어를 잘 했답니다.
그런 저에게 남편은 첫 눈에 반하여 출장이 끝나갈 무렵 청혼을 하였습니다.
청혼을 받던 그날밤..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는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기회라고 생각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나라 내 고향과 어머니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아홉 살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는 시장 귀퉁에서 나물을 팔고 막노동을 하셔서 저를 키웠습니다.
저는 그런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줄 방법은 한국행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간호원으로 한달내내 근무 해 보았자 조금의 발전도 없었던 힘들었던 생활..
밤이 새도록 시장에서 자판을 하셨던 나의 어머니는 딸의 한국행을 극구 말리셨습니다.
"안된다. 절대 안된다. 피 부치 하나 없는 땅에 가서 어떻게 살려고.."
어머니의 만류에도 저는 북경에 가서 혼인서류를 하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했고.
남편의 진실된 눈을 보며 저를 행복하게 해 주리라 믿었습니다.
97년 2월에 저는 홀로 남편을 찾아 한국에 왔습니다...
행복만 있을 줄 알았던 한국생활에는 결코 행복만이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연변으로 출장간 잘난 장남 아들이 턱하니 한족인 중국 처녀를 데리고 와서 산다고 하니 어떤 시어머님이 달가워하겠습니까?
저는 시어머님을 이해 할 수 있었지만 시어머님은 저를 이해하시지 못하시고
새벽부터 밤까지 저만 보시면 화를 내시고,
"다시 너거 나라로 가라" 라고 하시며 제 가슴에 못을 박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숨쉴 힘 조차 없는 고통의 시간을 저는 또 한번 겪어야 했지요..
빠르게 말씀하시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경남사투리를 하시는 시어머님께 잘 보이기 위해 하루에 4시간만 자고 한국의 풍습과 예의범절을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악착같이..죽을힘을 다해 처음부터 배웠습니다.
시집살이를 하면서 식당에서 일년간 주방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많은 한국사람과 접하면서 저는 한족인 중국처녀에서 한국인 아줌마로 변하였습니다.
한족인 중국인 티가 나지 않을려면 언어를 바로 교정해야 되기에 텔레비전을 보면서 텔렌트 들이 하는 표준어 발음을 따라 연습을 하고 볼펜을 물고 침을 흘리며 발음들을 교정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와 영어를 배워야 어디에 가서든지 평범스러울 것 같아 학원을 다니며 배웠구요.. 육개월 전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누구도 제가 연변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저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고..컴퓨터를 잘하는 평범한 한국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포항이 고향인 제일 친한 아파트의 친구가 며칠 전 제게..
"진수 엄마는 고향이 어디야?" 라고 물었을 때
저는 그냥 그렇게 평소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태어나긴 강원도에서 태어났어.
이곳 저곳 하도 많이 옮겨다녀서.. 내게는 기억나는 고향이 없다. 호호."
하며 웃음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