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작성일
- 2001.10.23 15:58
- 등록자
- 정은희
- 조회수
- 728
아버지...
며칠만 있으면... 천사가 태어나요...
지금 이순간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남편도 아니고 배속에 있는 천사도 아닌 ... 엄마 얼굴이 보고 싶어요
아버지... 저 지금 솔직히 두려워요
이 두려움을 제 곁에 엄마가 계셨다면... 위로 해 주었을 텐데 말입니다
엊그제 결혼을 한 것 같은데..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 이젠 한 아기의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어요
가끔씩.. 아주 가끔씩... 저의 결혼 사진을 꺼내 보곤 합니다. 사진 속에 비어 있는 엄마의 자리를
큰 엄마가 대신 서 계시네요... 그 옆에는 이마에 주름이 한 가득인 아버지가 계시구요.
저 한번도 아버지께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지만... 저 결혼 할때... 엄마가 제일 보고 싶었어요
저희 싫다고 도망간... 아니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 쉬고 있는 것 조차 싫었던 엄마가 제일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순간도 그 누구도 아닌 엄마가 가장 보고 싶네요
한참 입덧이 심할 때 엄마가 해 주시던 비빔냉면 먹으면 나아질 것 같았는데.... 결국 남편과 함께 냉면집으로 가서 먹었어요 그때도 엄마가 그리웠어요
며칠 전 천사가 태어나면 입힐 옷가지와 ... 용품들을 몇가지 샀어요.. 생각 보다 돈이 많이 드네요
아기 이불 해 주려고 수예점에 갔는데... 친정엄마와 함께 온 임산부가 엄마에게 이것 사달라.. 저것 사달라고 조르더군요
원래... 아기 이불은 친정엄마가 해 주는 거라면서요.... 수예점 주인 아주머니께서 저의 속도 모르고
" 혼자 오셨어요..." 라고 하시기에 " 엄마가 먼저 보고 오라고 해서 구경 왔습니다..."라고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어요. 뒤돌아 집에 오면서... 그 거짓말이 내내 마음에 걸려 돌아오는 동안 발걸음이 어찌나 무겁던지... 저 너무 나쁜 딸이죠?...
어젠 저처럼 배가 잔뜩 불러온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친정엄마가 벌써 오셔서 지금 기저귀감 만들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또 한번 전화 끊고 울었어요
사실... 전 기저귀를 샀거든요... 아기 용품점에 갔더니 천 기저귀도 팔더라구요...
속으로 시어머니께 내심 섭섭했어요... 당신께서 손수 만들어 주신다고 하면 좋을텐데... 몸이 불편하시다며 저에게 알아서 하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친정엄마가 계셨다면 시어머니께서 그랬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기 한번 부리며 함에 넣어 왔던 기저귀감 꺼내어 손으로 한뼘,두뼘 재어 가며
천을 잘라서... 친구가 얘기 해 준 그대로 천 끝 부분을 일일이 감침질 했어요...
겨우 겨우 완성 해서 만들어 보니 삐죽,삐죽 튀어 나온 실 사이로 천의 모습이 웬지 저의 모습과 같이 처량하고 측은해 보이는 것 있죠?...
그래서 다시 옷장 속으로 밀어 넣고... 붕어빵 먹으면서 울었어요
아버지! ....
아무리 시어머니가 잘 해 주셔도 친정엄마 하고는 또 다른가 봐요..
요즘 들어 엄마의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오고 엄마가 해 주시던 맛있는 반찬이 먹고 싶은거 있죠
제가 알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15년 전의 젊은 모습인데... 지금은 엄마도 많이 늙으셨을테죠.
만약... 저에게도 엄마가 계셨다면... 기저귀감도 만들어 주셨을 테고... 또 아기 이불도 사 주셨겠죠?..
다른 친구들 처럼 산바라지 해 주신다며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들고 오셔서 한달동안 당신 손주 안아주시며 저에게 미역국도 끓여 주시고... 그옛날 엄마의 이런 얘기 저런 얘기도 해 주셨겠죠?..
저... 그 친구가 지금 이순간.. 너무 부러워요
그래서 엄마가 더 원망스럽고... 그런가 하면 너무 보고 싶어요
저 이 아이 태어나면... 보란듯이 잘 키울겁니다
그래서 제 자식에겐 어떠한 고통도 물려주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 지난번에 보셨던... 그분... 참 좋은 분 같았는데.. 이젠 그만 재혼하세요
언제까지 엄마를 기다리실 거예요
이만큼 기다려 주셨으면 엄마 한테 하실 도리 다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엄마도 아버지의 지금 이런 모습 별로 좋아 하시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좋은 분 만나 행복하게 사신다면... 엄마께서도 한 짐 벗어 던지셨다고 생각하실거라 전 믿고 있어요
아버지!... 아버지!....
저의 삼남매 키우시면서.. 고생 많으셨죠?...
저의 천사 태어나면... 아버지 오실꺼죠?...
꼭... 오세요... 기다릴께요...
맏딸 올립니다
아버지께 좋은 화장품 선물을 해드리고 싶은데..
화장품 상품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