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다 얻는 것은 소중한법
- 작성일
- 2001.11.22 10:37
- 등록자
- 은아
- 조회수
- 692
경희님..용수님. 안녕하세요
아침에 일어나 커텐을 여니 창문에 희뿌옇게 습기가 가득 하더군요.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엄마"라고 써 보았습니다.
불혹의 이 나이에도 항상 보고 싶은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그리운 마음에 아침 일찍 전화를 드렸더니 오늘 서울은 굉장히 춥고 안개가 자욱히 끼어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다고 하시며..
"은아야..집안에서도 따스하게 있어야해! 여자는 몸이 따뜻해야해 그리고 끼니때마다 밥을 꼭 챙겨 먹거라..알았지"
하시며 저의 건강과 가족들의 안부를 챙기시는 어머니.
제게는 그러시는 어머니 당신께서는 오늘 새벽에도 싱크대에 서서 혼자서 대충 아침을 드시고 지금도 장사를 하고 계시겠죠?.
어머니...
결혼을 하고도 지난 십 년 가까이 아이가 생기 않아 항상 걱정하던 제게.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얻는 것은 소중한 법이란다..기다리면 꼭 오는 법이야. 조바심 내지 말고. 기다리자"는 어머니의 말씀..
십 년 동안 한결 같은 말씀만 하셨던 어머니가 미워 저는 더 많이 짜증을 내었지요..
"기다리면 오긴 뭐가 와..맨날 그날이 그날이지..".하며 저는 투정만 부렸지요.
올해 윤지를 낳고서야 저는 어머니의 말뜻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윤지를 낳고 저는 난생 처음 어머니와 한 달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어 보았습니다.
제가 결혼해서 십 년 만에 아이를 낳으니 기분이 좋아서 시장사람들에게 한 턱 내시고..
정신 없이 가게를 친한 분께 맡기시고 저의 산후 조리를 위해 한걸음에 포항까지 달려 오셨던 어머니....
한 달 내내 일분일초도 제 곁을 떠나시지 않으시고 저의 산 바라지를 해 주셨던 어머니
인자한 어머니의 얼굴..따스한 어머니의 손길을 저는 오랫동안 느껴 보았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제게 어머니는 눈뜨고 일어나면 아랫목에 따스한 밥을 묻어 두시고 장사 나가시고..저녁 늦게 제가 잠들어 있으면 들어오시던 어머니..
제가 네 살 나던 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두 딸을 기르시기 위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
제 기억 속에 어머니는 언제나 머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물건들을 진열하시고 허리 굽혀 일하던 모습 뿐 이었는데 윤지 낳고 어머니와 꿈 같은 한 달을 보내고서야 어린 시절 아팠던 기억들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간혹 어머니는 며칠씩 외박을 하셨지요
어머니가 오시지 않는 날이면 언니와 나는 둘 꼭 껴안고 잠을 자고..
그 다음날이나 며칠 있다 보면 어머니는 오셨고
어린 두 딸에게 어디 갔다 왔는지 말씀도 안 하셨던 어머니.
삼십 년 전 어느 너무나도 추운 겨울날도.
며칠동안 집에 오시지 않으시던 어머니를 대신하여.
세 살 많은 언니는 수제비를 끓여 제게 먹이고 연탄불을 꺼트릴까봐 연탄불 아궁이를 지키고. 며칠 밤낮을 그렇게 보냈는데도 오지 않던 어머니..
연탄도 먹을거리도 모두 떨어졌는데 오지 않았던 어머니...
어린 나는 울고 또 울고...
나의 큰 울음소리를 듣고 엄마가 올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 울었더니 저를 달래던 언니도 지쳐 버렸는지 같이 엉엉 소리내어 함께 울었는데도 엄마는 오지 않고..그러다 잠이 들어 아침이면 어머니가 와 있을 줄 알았는데도 오지 않았던 어머니..
밤새 두려워 울고 추워서 울고 배고파 울었던 그 날...
언니에게 "언니야 엄마 도망갔나보다 " 했더니
언니는 "아니야..단속에 걸리셔서 구치소에 계실거야..돈이 없으셔서 며칠동안 머물고 계실거란다. 기다리면 곧 오실 거야"
어머니가 분명히 오실거라는 언니의 말에 울지 않고 기다렸던 나..
그날은 언니의 말대로 엄마는 오셨고..
추운 골방에서 우리셋은 울고 또 울고...
어머니는 딸들에게 추위와 배고픔을 주어 죄책감을 느끼신다며 우시고 또 우시고..
언니와 나는 어머니가 오셨다는 기쁨과 며칠동안 두려움과 서러움에 울고...
겨울만 되면 수 없이 싸워야만 했던 추위와 배고픔 때문에 저는 겨울이 지금도 무섭답니다.
몇 번이나 연탄가스를 마셨는데도 병원에 갈 돈 이 없어 김칫국물을 몇 사발씩 마시고 집에 있었던 기억..동상에 걸려 따뜻한 곳에만 가면 빠알갈게 달아 오르던 볼과 손과 발들
항상 그리웠던 어머니의 손길...
결혼을 하고도 가슴 한 곳에는 어린시절의 상처가 가슴 한켠에 있었는데...
윤지낳고 지극정성으로 산후조리 해 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며 그 모든 상처들이 치유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자는 아이를 낳아보아야 어른이 되나 봅니다.
나이만 마흔이었지 응석에다 투정만 가득 했던 저입니다.
이제는 어머니가 같은 하늘아래에 계시다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행복 합니다.
어머니 살아가면서 받은 사랑을 갚으며 살아 갈께요.
언니와 제게 좋은 것을 주지 못했다는 그 죄책감 버리세요..
이제는 어린 꼬마도 아니고 우리가 어머니를 모시고 돌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