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늦둥이 아들 사랑법
- 작성일
- 2001.12.11 17:06
- 등록자
- 정향숙
- 조회수
- 732
제 남편은 종갓집 장남으로 남아선호사상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저 역시 종갓집 맏며느리로 첫 애를 임신했을때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마음이 많이 무거웠답니다. 10달 후 막상 딸을 낳자 남편은 "수고했어"라는 말만 달랑 남기고 총총히 병실을 나가더군요. 제가 아이의 성별을 결정짓는 것도 아니건만, 건강하게 태어나준 것만해도 저는 참 감사하던데, 그런 모습을 보이는 남편이 밉기까지 했답니다. 그렇게 만 3년이 지나 저는 또 임신을 하게 됐는데, 한번은 제 배에 손을 얹고 남편이 그러더군요. "내가 한번 실수하지, 또 실수할까봐. 꿈도 그렇고 이번에는 틀림없는 아들이야, 아들이라구. 햐아, 목욕탕 같이 가서 등도 밀어주고, 생각만 해도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네"하는게 아니겠어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남편의 그런말은 또 다시 제게 적잖은 부담이 되었는데, 점점 배가 불러올수록 제 배모양은 그러니까 첫 애때와 똑같지 뭡니까. 왜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있잖아요. 딸을 가진 배는 박을 엎어놓은 모양이라고. 제 배가 꼭 그랬거든요. 10달 후 역시나 또 딸을 낳았습니다. 딸딸이 아빠가 된 남편은 또 "수고했어"라는 말만 남기고 총총히 사라지더군요. 평소 "딸이면 어떻노. 내사 마 괜찮다. 에미하고 아만 건강하면 그걸로 된기다"고 하시던 시어머님도 섭섭함은 감출수가 없으셨던지, 제 손을 잡고 "애썼다"라는 말만 하시더군요. 저는 죄송스러움도 잠시 어찌나 서럽던지 병실에 누워 몰래몰래 눈물을 훔쳤는데, 얼마나 울었던지 눈이 다 퉁퉁 부었더군요.
그렇게 하루하루 세월은 흘러 큰애가 책가방을 메고, 작은딸이 유치원 가방을 메고, 총총거리며 대문을 들어설때마다 은근히 늦둥이 손주를 바라시는 시어머님과 남편의 눈치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둘째가 다섯살이 되던해였습니다. 무엇보다 더 늦기전에 남편을 꼭 닮은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 다 낳는 아들 나도 낳아야지'라는 큰 결심을 한 저는 나름대로 아들낳는 방법에 대해 책을 뒤적뒤적하며 드디어 운명의 낮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배란기를 앞두고 금욕을 했던지라, 우리 부부 더도덜도 말고 떡두꺼비같은 아들하나 점지해 달라고 삼신할머니께 기원을 드리며 거사를 마쳤습니다. 그렇게 또 10달이 지나고 드디어 새생명을 제 품에 안게 되었는데, 기필코 저는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때 제 나이 서른 일곱, 남편 나이 불혹하고 하나였습니다. 시어머님이 기뻐하시는 모습과 두 딸을 낳았을 때와는 달리 "수고했다. 사랑한다. 남편이"라고 써진 커다란 꽃바구니를 건네주는 남편의 입은 귀에 걸렸더군요. 그 모습에 저 역시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에 어찌나 기쁘던지요. 퇴원을 하고 집으로 오자마자 남편은 기저귀도 잘 갈아주고, 안아주고, 또 한밤에 아이가 징징거리며 울때도 "당신은 푹 자. 내가 볼게."하며 딸아이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이는게 아니겠어요.
평소 남편의 육아원칙은 '물고기를 잡아주지말고 잡는법을 가르쳐 주자'였는데, 아들에게만은 예외였습니다. 바나나를 먹일때도 "몸에 해로운 물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빠가 껍질까줄게"하는 모습에 '저 사람 내 남편 맞아'하는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인제 32개월된 아들녀석은 그 결과 누나가 있음에도 28개월까지만 해도 아빠의 지나친 사랑(?)때문에 말이 조금 느렸답니다. 단순히 몇 단어만 더듬더듬거리더니 요즘은 못하는 말이 없어요. 그런 녀석이 날씨 좋은 날이면 "아빠 자전거 탈래요" "아빠 오토바이 태워주세요"라는 말에 두말 할 것도 없이 "오냐, 오냐"하며 자전거타는 아이 옆에서 함께 달리기도 하고, 딸아이 둘과 아들을 125cc 오토바이에 태우고서 동네를 돌아 집으로 들어오는 남편과 아이들의 얼굴에 환하게 퍼지는 웃음을 보며 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가 된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