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예요
- 작성일
- 2001.12.17 06:09
- 등록자
- 김미영
- 조회수
- 640
엄마!
어떤 인사말로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쉰 다섯번 째 생신을 정말 정말 축하드리며 처음 써보는 편지를 어머니께 바칩니다
제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서 길러보니 조금씩 철이 들어 어른이 되어갑니다
아버지 기일이 다가오니' 서른 아홉 젊은 나이에 혼자 되시어 시부모님 봉양에 저희 삼남매를 기르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16년동안 한번도 진심으로 엄마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적이 없었죠. 아버지 살아 계셨을 때도 가정생활은 거의 엄마가 꾸려가셨으니 어쩌면 그저 당연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손에 물 마를 시간도 없이 . 하루 쉬는 날도 없이. 일 하다 다치셔도 제대로 치료할 실간도 없이 그냥 참으면서 고통을 잊고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먼저 가신 아버지가 더 원망스럽습니다
엄마 이번에 제 자식이 아파서 병원에 한 달 정도 있으면서 엄마도 같이 간호하시느라 힘드셨죠. 불편한 간이침대에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정말 고맙습니다
딸은 만만한 게 친정엄마라고 급한 일, 답답한 일만 있으면 친정엄마에게 떠맡기고, 투정부리고 딸이 하나 있기에 다행이죠. 다른 집 딸들은 잘 살아서 친정도 잘 돌보고 한다는데 힘이 못 되어 드려서 죄송해요
엄마도 어릴 적 일찍 부모를 여의시어 저희 삼남매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얼굴도 모르죠. 어릴 적엔 외갓집 가는 애들이 참 부러웠어요. 방학이 되면 왠지 외갓집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재롱도 부리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모없이 세상을 살아가느라 힘든 것에 대해 연민을 느껴야 하는데 말이죠.
초등학생 때는 그야말로 철이 없어 몰랐죠. 아빠가 술로 속을 썩이시니까 엄마가 농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다 대학병원에 실려 갔었잖아요.무엇이 엄마를 힘들게 하는지, 사는 게 뭔지를 몰랐죠. 그리고 1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죠. 무거운 짐만 엄마에게 남겨두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고등학생 때는 괜해 엄마한테 투정도 많이 부렸죠. 힘들게 일하고 들어오신 엄마께 위로는 커녕 화가 난다고 며칠씩 말 안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죠. 필요한 게 있어서 답답하면 쪽지 써서 돈 받아가고 얼마나 힘들게 번 돈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없이 그냥 내가 필요한 것만 생각했죠. 취업할 땐 면접에서 아버지에 대해서 물을 때 난감했죠."편모슬하"에서 자란 자식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진 경우도 많았거든요. 그때 또 한번 아버지를 원망하며 그런 아버지를 만난 엄마도 미워했죠.
엄마한테 정말 죄송한 일은 가슴에 이상이 생겨 수술하셨을 때 병간호 하러 갔다가 퇴원하는 것도 안 보고 올라와 버린 일 정말 죄송합니다. 그 땐 왜그리 철이 없었는지 . 엄마는 아파서 병원에 계신데 뭐가 그리 바빴는지
지금의 나이에 자식들도 제갈길 찾아가고 하니까 더 허전하시죠. 자식 키우시느라 앞만 보고 일만 하며 사시다가 마음이 맞는 편한 친구가 생기셨다고 제게 얘기하셨는데 저는 어떻다는 반응도 보이지 않고 못 들은척 넘어갔죠. 드라마에서 보면 더 말도 안되는 경우도 수긍이 가고 너그러워지는데, 더 늦은 나이에도 마음맞는 사람끼리 만나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미기도 하는데 제가 너무 구식인지 괜히 배신감 같은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엄마가 힘들고 지칠 때 열자식 보다도 더 필요한 한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엄마 마음 알아주는 건 딸 밖에 없다고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이 멀리 있어 자주 보기도 힘들죠
엄마 그래도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얘기를 하고 나니 제 마음은 한결 편해요
엄마의 바램처럼 환갑까지만 힘든 일 하신다는 목표가 있으니 5년 뒤를 생각하며 조금만 참아요. 그 뒤엔 행복하겠죠
엄마 항상 건강하시구요 힘 내세요
앞으로 더 잘할께요. 귀여운 손자 재롱도 보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의 하나 밖에 없는 딸 미영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