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아픈손가락
- 작성일
- 2002.01.09 12:15
- 등록자
- 정은희
- 조회수
- 645
안녕하세요. 박용수, 김경희씨~
며칠째 연이어 내린 폭설로 우리의 가슴까지 이대로 꽁꽁 얼어버리는게 아닌가하는 조바심을 갖게 하더니 오늘은 창밖으로 내리쬐는 햇살이 언제 그랬느냐는듯 빙그레 웃는 모습이 자연의 신비로움을 그대로 나타내는듯 하네요.
이런 겨울에 봄을 그리워하게하는 일월이면 전 저의 부모님에게는 유난히 아픈 손가락인 큰언니가 생각이 난답니다.저의 언니는 36년의 세월을 살아 오면서 참 많은 삶의 고비를 지나 왔답니다.
일월에 태어난 저의 언니는 한동안 아이가 없던 집안에 웃음 꽃을 만들어 주었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5 살 때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에 기부스 를 해서 부모님의 가슴을 아프게 하더니, 유난히도 끝이 없는 잔병들은 하루에 한번씩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되게 했지요. 조금만 아프면 주무시다가도 언니를 등에 엎고 동네병원으로 달리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속에 아련하게 떠오르네요. 그래도 중학교에 가고 나서는 몸은 약하지만 특별히 아픈 곳이 없어서 한동안 부모님을 안심시키더니 고등학교를 타지로 가게된 언니가 자취를 하다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쓰러지고 말았답니다. 다행히 우연히 언니집에 들렀던 친구가 발견하여 병원으로 옮겼지만 의사선생님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시며 산소 탱크에 언니가 들어가도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고 하셨죠. 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그런건가봐요 부모님의 눈물어린 호소로 언니는 산소 탱크에 들어갔고 부모님은 이틀동안 식음을 전폐하시며 차가운 병원 대기실앞에서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리시며 기도만하시더라구요. `우리 자식 살려주시면 더욱 착하게 살겠다고, 차라리 이 목숨을 거두어 가시라고...` 부모님들의 사랑은 기적도 만드나봐요. 언니는 정말 기적처럼 살아났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의 후유증 때문인지 언니의 지나친 건망증은 사람들을 가끔씩 당황하게 한답니다. 그리고 그 때 기절하면서 아궁이에 데여 흉터가 생긴 세 개의 발가락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답니다.
큰딸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언니를 보며,막내인 나의 사랑까지 빼앗긴듯한 조바심에 철없는 제가 가끔 언니에 대해 한마디하면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죠. "그래도 너희 큰언니가 그 때 살아났으니 우리가 이렇게 웃으며 지낼 수 있잖니, 그 때 네 언니가 그대로 세상을 등지고 저 세상으로 갔다면... 이 아빠는 지금 너희 큰 언니가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행복하구나"
언니를 평생 보호해줄것만 같은 듬직한 형부의 모습에 부모님께서는 한편으로는 안도를, 한편으로는 걱정을 하시며 시집을 보내셨답니다. 아들만 셋인 집에 형수들이 못낳은 손자를 막내며느리가 낳아주었다며 유난히 언니를 예뻐하시는 시부모님의 모습에 저희 부모님은 무척이나 행복해하셨죠.
그런데 이런 저의언니의 큰아들이 작년에 초등학교에 들어 갔답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의젓하여 언니의 청소며, 식사 차리는 일이며, 빨래를 돕던 이 녀석이 저는 가끔은 안타깝기도 해요. 엄마의 건망증으로 학교준비물을 가끔 못 챙겨 가서, 언니가 식사당번을 잊어버리고 학교에 안가서 아무런 영문도 모르시는 선생님께 가끔 꾸중을 듣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는요. 하지만 이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최고라고 항상 이야기하는 이 녀석이 전 정말 고마워요. 어려서부터 잔병없이 씩씩하게 자라주는 기특한 우리조카용윤이, 지금처럼 이렇게 잘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비록 심한 건망증으로 가끔씩은 우리를 당황하게도 짜증이나게도 했지만 이제 나이를 먹고나서야 언니가 우리곁에 있다는게 얼마나 큰 축복인줄을 알게 되었답니다. 항상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는 생활력 강하고 알뜰한 우리언니에게 못난 동생의 사랑을 이 겨울이 다가기전에 전하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