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그림자.
- 작성일
- 2002.01.30 18:58
- 등록자
- 정은희
- 조회수
- 747
어머니~
이만큼이나 나이를 먹고나서야 철이 든건지, 아니면 나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서인지 이제야 그 긴세월동안 외로웠을 어머니의 아픔을 알듯 하네요.
그 옛날 굶기를 밥먹듯이하던 때에 아들만 다섯인집에 귀한 딸네미가 태어났다고 아들은 꽁보리밥을 먹어도 눈에 넣어도 안아플 귀한 딸네미는 흰쌀밥에 부엌일이 무언지 밭일이 무언지도 모를만큼 외조부님의 사랑을 듬뿍받고 자란 어머니가 지독히도 가난한 아버지를 만나 부모님의 반대를 뒤로하고 결혼을 하시면서 앞못보는 시할머니와, 동네에서 호랑이로 소문난 시아버지, 외출만하시면 돌아오지않는 시어머니, 그리고 올망졸망한 시누이들과 함께 시집살이를하며 배고픈게 무언지 고생이 무언지를 알게 되었다하셨죠. 끼니때마다 바닥이 들어나는 솥바닥을 긁으시며 한숨지으시고, 추운 겨울밤에 시부모님의 솜저고리를 찬물에 빨으시며 언손을 불어가며 외할머니를 그리워하셨다던 어머니! 자식에게 그 배고픈 설움을 남길까봐 해가 지도록 허리한번 피지 못하시고 밭일을 하시던 어머니...
식사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빨래가 조금만 더러워도, 음식이 뜨겁거나 차가워도, 손녀들이 조금만 떠들어도 소리를 버럭 질러대시는 할아버지 때문에 하루도 맘편할날이 없었던 어머니!
그나마 장날마다 몰래 집에 들려 찬거리며 용돈을 찔러넣어주시고는 할아버지 눈에 뛸까 황급히 돌아가시곤 하던 외할머니 때문에 삶에 위로가 되셨다던 어머니에게 외할머니는 또다른 아픔을 주시고 말았죠. 어머니께서 저를 갖던해에 오십구세라는 너무 젊은 나이에 외할머니는 세상을 등지셨고 외할머니의 죽음이 너무도 고된 시집살이를 하는 딸네미 때문에 가슴에 병이생겨 그리 일찍 가신듯하다며 평생을 가슴에 응어리를 지고 사시는 우리 어머니!
어릴적 어머니의 아픔을 모르는것도 아닌데 철없는 막내딸에게 속이라도 풀고픈 마음에 어머니께서 이런저런 고생한 이야기를 하시면 왜 그때는 그이야기가 그리도 듣기가 싫었던지...할아버지가 주워왔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다른 손주에게는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가 유독 막내인 저만은 예뻐하던 할아버지를 험담하는듯하여 공연히 어머니에게 가슴아플 소리를 별 생각없이 툭 던지곤하던 철없던 저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제야 가슴이 저려옵니다.
가끔씩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짓곤 하시던, 외할머니의 기일이 가까워올때마다 우울해하시던 어머니~ 어머니를 잃는다는게 어떤건지를 몰라 어머니의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정도 인지를 모르던 제가 몇년전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으시고 마취가 반쯤 깬 상태에서 무의식속에서 외할머니를 찾으시며 눈물을 보이시던 어머니를보며 왜그리도 가슴이 아프던지요. 그때서야 어머니의 고통스러워하는 그얼굴에서 어머니의 세월의 아픔을 그리고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은 알게 되었답니다.
칠년전 누구보다도 건강했던 어머니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당뇨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는 시집와서 너무나 고생을해서 생긴병이라며 그 병이 마치 자신의 잘못때문인것처럼 깊은 절망감에 빠지시고 말았지요. 누구보다 어머니를 끔찍히 사랑하셔서 잠자리에 들면 두손을 꼭잡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시고, 앞으로 자식들이 크고나면 같이 여행을 다니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자며 어디에 가고 싶은지를 묻고 또 물으시던 아버지의 사랑때문에 그 매섭던 시집살이도 꿋꿋이 견뎌온 어머니가, 자신의 병명 앞에서도 별것 아니라며 걱정하지 말라시며 웃으시던 어머니가 이제는 많이 힘들어한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는 그옛날 외할머니를 잃은 슬픔에 소리죽여 우시곤 하던 어머니의 그 쓸쓸했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저려옵니다. 혹시 어머니도 그옛날 외할머니께서 젊디 젊은 나이에 어머니를 떠나신것처럼 나를 떠나실까하는 두려움에...
하지만 어머니 아직까지 저에게는 그리고 이세상에 곧 태어날 우리아기에게는 어머니의 사랑이 몹시도 필요하답니다.
어머니 의사선생님의 말씀처럼 이제는 스트레스 받지말고 좋은 음악, 좋은 음식 그리고 자기만의 생활의 여유를 가지고 사셨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저희도 자신의 가정을 꾸릴만큼 많이 자랐으니 자식걱정일랑은 접어두시고...
어머니 당신이 이세상에 계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희는 세상살이가 고달플때마다 힘을 얻곤합니다. 부디 오래오래 저희 곁에 계셔주세요.
또다른 한해가 시작된지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가네요. 올해는 전보다 더 건강하시길, 행복하시기를 기도드려봅니다. 그리고 저의 부족하기만한 이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영원히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