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얘기
- 작성일
- 2002.02.15 11:27
- 등록자
- 왕청자
- 조회수
- 617
결혼하여 남편과 같이 살아온 세월이 어느새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른 것 같습니다.
그 짧지 않은 시간을 때로는 서로 아껴 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면서 같이 살아온 것이 우리 부부입니다.
그러면서 더욱 정들고 곰살맞게 사는 것도 또한 우리 부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아니한 것도 같습니다.
싸울 때는 무지무지하게 미운 것이 남편이고 쳐다보기도 싫은 것이 남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상 우리 부부간의 싸움이라는 것이 하찮은 말싸움에서 시작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결과는 서로에게 언제나 상처를 남기며 끝나는 것이 보통의 일이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부부싸움이 일어나면 아이는 엄마 아버지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저녁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전화가 왔는데 저는 그 시간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전화기 근처에는 남편이 가까이 있기에 저는 남편더러 전화를 좀 받으라고 하였지요.
남편이 자기 전화가 아니다고 극구 사양하는 사이에 전화는 한참을 더 울어대고 저는 전화가 끊길까봐 물 묻은 손을 남편에게 보여 주면서 "이래가 우에 받으란 말인교?" 하며 좀 쏘는 말투로 말하였습니다.
그제야 남편은 전화를 받더군요.
전화를 받은 남편은 "여보세요? 여보세요?"를 몇 번 반복하더니만 전화가 끊겼다면서 "봐라 내 전화 아이라 캤잖아!" 그러더군요.
그러면서 "근데 전화를 했으면 말을 해야 될 거 아이가? 말을? 사람들이 말이야 에티켓이 있어야지! 내 목소리 듣고는 딱 끊어버리니… 에이!"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저는 속으로는 뜨끔했지만 그 전화가 마치 제게로 온 전화가 틀림없다는 말투로 궁시렁 거리는 남편에게 "그 전화가 내 전화인 줄은 우에 아는교?" 하며 남편의 말을 오히려 맞받아 쳤습니다.
제 친구들 중에는 전화를 했다가 남편이 전화를 받으면 끊어버리는 이도 더러 있었으나 저의 교육이 있고 부터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맞받아 치는 제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베어 있었습니다.
그러며 의심이니 의처증이니 하는 말들도 튀어나온 것 같았습니다.
듣고 있던 남편은 더 이상은 못 참겠던지 "표현을 적절히 해야지! 이건 의심이니 의처증이니 하는 그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고 전화 에티켓을 말하는 거 아이가! 배운 사람이 그것도 제대로 구분 못하나? 쯧쯧…" 혀까지 차면서 말을 하더군요.
그 한마디로 맞받아 치던 기세는 그만 꺾이고 말았지요.
그러나 발에 밟힌 개구리도 한 번은 움찔한다는데, 저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마지막으로라도 한마디 더해야 했습니다.
"내는 가방 끈이 짧아서 그런 거는 잘 모른다. 와요?"
저의 이 말에 "남들이 가방끈 늘갤 때 당신은 뭐했노? 땡땡이 쳤드나? 꼭 그래 표시를 내요 표시를! 에티켓을 모른다 말이가?"
저는 더 이상 할말이 없었습니다.
남편의 그 에티켓이란 말이 비수처럼 제 가슴을 후벼파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며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우리의 싸움(?)을 구경만 하고 있던 아이가 "아빠 내 가방 끈은 대게 길어요. 한번 보실래요?" 하면서 책가방을 어깨에 걸고 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우리는 피식하며 웃음을 터트렸고 우리의 그 언쟁은 그렇게 끝이 났던 것이었죠.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우리의 싸움에 간섭(?)을 하여 그 싸움이 깊어지지 않도록 한답니다.
그래서도 부부간에는 자식도 있어야하나 봅니다.
자식 자라는 것 보는 것도 살 맛 나는 것 중에 하나일 테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