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해보는 도배
- 작성일
- 2002.02.18 15:18
- 등록자
- 서영화
- 조회수
- 752
지난 9일 남편은 2시에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왔습니다.
자주 찾아가지 못하는 고향이라 이번 설에는 일찍 가서 어머님께 손주도
보여드리고 맛있는 것도 해드려야지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형님들보다 일찍 하동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전화도 드리지 않고 집에 찾아가니 마침 어머니는 혼자 저녁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김치하나, 나물하나 얹혀 있는 밥상을 보는 순간 마음이 좀
착찹해지더군요. 아버님도 안 계시고 혼자계시니 어머니께서는 식사를 거르
시기도 하시고 별 반찬 없이도 식사를 하십니다. 제가 "시장에 가서 맛있는
찬거리좀 사올께요."하고 말씀드리니 어머니께서는 "나는 고기를 별로
안좋아하고 나물을 좋아한다. 밭에 가서 나물 뜯어와서 반찬하면 된다."
하시며 저를 말리십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손주를 보시고는 너무 좋아하
셨습니다. 영제는 할머니에게 재롱을 떨고 어머니는 귀여워서 어쩔줄
모르십니다. 그 모습을 보니 어머니께서 사람이 그리우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다음날 어머니는 새벽다섯시에 다른집에 일을 해주시러
가셨습니다. 굴을 까러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저희와 같이 집에서 쉬시자고
말씀드렸지만 2월에는 쉬는 날이 많아서 그날은 꼭 일을 가셔야 한다며
가셨답니다. 남편과 저는 아침을 지어먹고 집안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를
했습니다. 쓰지 않는 방도 쓸고 닦았습니다. 몇군데에 보이는 거미줄도
쓸어내리고 냉장고도 청소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엌청소를 하는데 부엌
벽지가 너무 낡았더라구요.
군데군데 곰팡이도 피었고 음식물이 튀어 지저분했습니다. 남편말로는
95년도에 집수리할 때 도배를 했었다고 하더군요. 이미 7년이 지났으니
그렇게 낡을수밖에요. 그순간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어머니께서 일터에서
돌아오시기 전에 도배를 해두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작은방을
청소할 때 도배지 세 두루마리가 있는 것을 보았거든요. 그리고 부엌천장은
나무판자로 되어있어 도배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벽지도 충분하고 의자
없이도 할수 있을 것 같아 남편에게 우리가 도배를 할수 있을까 하니
남편이 예전에 해보았다고 자신있다고 해보자고 하더군요. 저는 썩 자신은
없었지만 하면 될것도 같아 남편을 믿고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영제를 데리고 큰방으로 가서 만화를 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과자 한봉지를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영제는 좋아라 하며 과자를 먹으며
텔레비젼을 보더군요. 그리고 저는 밀가루를 찾아서 냄비에 풀을
쒔습니다. 그리고 도배지를 찾아와서 벽의 길이를 재어서 잘랐습니다.
저는 벽지에 풀을 바르고 남편은 벽지를 벽에 붙였습니다. 남편은 오랫만에
해보는 도배여서인지 벽이 막 울퉁불퉁 울더군요.
수건으로 쓸어내리기도 하고 빗자루로 벽을 쓸어내려서 우는곳을 겨우
잡았습니다. 냉장고도 이리저리 옮기고 식탁도 옮기며 빠진곳 없이
도배를 했습니다. 물론 잘못 붙여서 뜯어내고 풀칠을 해서 다시 붙이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풀이 작아 또 한번 풀을 쑤었습니다. 그렇게해서
저희의 도배는 세시간만에 끝났습니다. 그렇게 도배를 끝내고 바닥까지
모두 청소하고 나니 부엌이 얼마나 환하고 좋던지. 저희 가슴도 뿌듯
하더라구요. 여기저기 벽지가 우는 곳도 있었지만 하루지나면 괜찮다는
남편의 말에 안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집으로 오시기를 기다
렸습니다. 부엌을 빨리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어머니는 저녁 여섯시가 되어서 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씻을려고
부엌을 지나 욕실로 들어가시다가 깜짝 놀라시더군요.
누가 도배했냐고 물으시길래 우리가 도배를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렸
습니다.
그랬더니 "안그래도 부엌벽지가 하도 지저분해서 도배를 새로 했으면 하고
생각했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많이 칭찬해주셨습니다.
깨끗하게 잘되었다고 말씀해주셔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요. 다음날 형님
들과 아주버님들도 오셨는데 도배를 아주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답니다.
그래서 더욱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실 저는 결혼생활동안 세 번의 이사를
하였지만 한번도 직접 도배를 한적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직접하면 힘이 들고 벽도 울퉁불퉁해서 보기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아
항상 도배집에 맡겨버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도배를 해보니
별로 어렵지도 않고 보람도 크더군요. 그리고 다음번에도 할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답니다. 그리고 하동에서 명절을 보내고 집에 오면서 다짐
했답니다. 이번에는 부엌한곳만 도배를 했지만 다음에 이곳에 올때는
벽지를 사와서 다른방도 꼭 도배를 해드려야지 하구요. 다음번 고향갈
때가 무척 기다려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