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험생의 엄마 심경
- 작성일
- 2002.03.04 21:08
- 등록자
- 훈이엄마
- 조회수
- 675
학교마다 일제히 입학식이 열리고 새학기가 되었네요. 사랑하는 외아들 훈이가 드디어 고3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하고 은근히 걱정도 됩니다. 고3이 되는 학생들과 연관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이기도 하겠지요?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진통을 겪는 대입관련 소식이 요즘처럼 민감하게 피부에 와 닿을 때도 없었습니다. 예전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그저 그런가 보다"라고만 생각되었던 모든 사안들이 언제부턴가는 직접적으로 입게 될 이해득실을 따지게 되었네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을 실감하면서요.
아들 녀석은 방학 중에도 학교 보충수업에 주말 학원과외에 독서실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보기엔 정말 안스럽도록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 같은데, 막상 2학년 성적표를 받아보고는 실망스럽기 그지 없더군요. 그래도 입학할 때는 장학생에 선발되어 3년 뒤의 명문대를 목표로 삼았던 우리집 기대주였는데, 몇 십등을 사이에 두고 들쭉 날쭉한 과목 석차를 보고 절망스럽다 못해 눈물이 다 납디다. 녀석도 속이 상한 건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녀석의 말에 의하면, 대학입시에 반영되는 고교 내신성적이 절대평가되기 때문에, 학교에서 시험을 쉽게 출제하여 실력에 대한 변별력이 없으며, 따라서 시험치는 당일 컨디션에 따라 한 두 문제 틀리고 나면 석차가 쭈루룩 미끄러져 버린다나요... 저도 할 만큼 했는데, 결과가 이런 걸 어떡하냐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항변을 늘어놨습니다.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암튼 부모로서 자식의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하는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론 고교생활 3년을 몽땅 대학입시 만을 위해 바쳐야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암튼, 바싹 코 앞으로 닥아온 대학입시를 생각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바빠집니다. 부모 마음이 이럴진데, 당사자들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또, 불철주야 어름장을 놓고 때로 채찍을 가하시며 본의아니게 악역을 담당하시는 선생님들 마음인들 편할 리가 있겠습니까???
품은만큼 채워지는 게 욕심이라면, 이제 수험생이 된 고3 학생 누구에게나 실력이 쑥쑥 기지개를 켜며 수능 20-30점 씩은 거뜬히 업그레이드되는 현상이 전염병처럼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기적처럼 불가사의한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다들 기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목표로 삼은 대학에 척척 보란듯이 붙어주고, 동문 선배들이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에 합격하였다는 축하 현수막이 거리마다 나붙기도 하면 더욱 좋겠습니다.
개학 첫날부터 보충수업인지 자율학습인지 때문에 도시락을 두개씩 싸들고 간 아들은 이 시각 무얼 하고 있을까요? 단련이 되어서 난로를 안 피운 교실도 춥지 않고, 하루 열 시간을 넘게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있어도 허리도 안 아프고, 종일 작고 빽빽하게 쓰인 글씨를 읽고 골치아픈 문제를 풀어대도 머리 아플 줄도 모르고, 하루 서너 시간의 수면 만으로도 거뜬히 하루치의 피로를 털어버리고 아침이면 씩씩하게 등교하는 아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미래의 30년을 보장받기 위해 고교생활 3년의 몸고생 마음고생을 기꺼이 감내해 가는 녀석이 듬직하고 믿음직스럽습니다.
우리 아들과 똑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모든 학생들, 또 당근과 채찍을 가하시며 보이지 않게 애간장을 끓이시는 모든 학부모와 선생님들께도 고마움과 동류의식을 느낍니다.
그 녀석들에게 정말로 10개월 후엔 영광의 월계수가 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