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단무지
- 작성일
- 2002.03.07 08:05
- 등록자
- 박춘억
- 조회수
- 708
박용수 김경희님 안녕하십니까?
박용수님은 혹시 아내의 머리를 염색해 주십니까?
워낙 바쁘신 분이라 시간이 없으시겠지만 저는 가끔 아내의 머리를 염색해줍니다
긴 머리는 엄두가 나질 않다가 커트 머리로 짧게 자르고 나니 아내의 머리를 염색하기가 훨씬 쉽더군요
“남자가 쫀쫀하게 무슨 염색을 해 줘?” 반박을 하실지 몰라도 알뜰한 아내가 미용실에 가는 것을 부담 서럽게 생각하고 무엇보다 염색을 해 준 날은 맛있는 고기 반찬에 아내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이젠 ‘아내의 전용 염색 도우미’로 발 벗고 나섰습니다
사건 발단은 집집마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났던 지난 설날 전날
시집와서 여태껏 쫄다구(?) 동서도 없이 혼자서 음식 준비를 하던 아내는 그날도 나물 무치랴 생선 장만하랴 정말 북치고 장구치고 정신없이 일을 하더군요 저야 물론 콩나물을 다듬고 일을 돕긴 도왔지만…
고구마 튀김을 튀기다가 다리가 아픈지 풀썩 주저 앉던 아내의 머리를 보니 검은 머리가 어느 새 반쯤 올라오고 있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오자 전 직업의식이 발동하여 급히 슈퍼로 달려가서 염색약 한 통을 사왔습니다
집에는 어른들이 안계셨고 마침 우리 식구만 있던터라 과감하게 쉬고 있던 아내의 머리에 염색했습니다
고구마 튀김 냄새가 폴폴 나는 아내의 머리에서 가족을 위한 사랑과 수고로움이 묻어나왔고 저는 정성을 다해서 염색을 했죠
그기 까지는 좋았는데 아내는 음식 할 것이 태산 이라면서 비닐을 머리에 둘러쓰고도 계속 튀김을 튀기고 일을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놀이터에 놀러 나갔다가 한 시간 가량 후 돌아오니 그때 까지 아내는 염색한 머리를 씻지 않고 정신없이 고구마 튀김을 하고 있더군요
잠시 잊고 있었던 아내는 놀라서 급히 머리를 감고 나니~~~~~
아! ~~~머리 색깔이 색깔이 …~~~~~~
자연스러운 밝은 갈색 머리가 아니라 시간이 너무 오버 되어 밝다 못해 노랗게 노랗게 노란머리가 되었던 겁니다
저녁이 다 되어 돌아오신 어머님이 자꾸 아내를 쳐다보고 웃으시자 아내도 민망한지 같이 웃고 말았습니다
“어멈아~ 꼭 닥깡물(단무지) 뒤집어 쓴 것 같다 “
그날 아내는 어머니 말씀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습니다
두 분 그런 아내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노란 단무지에 빨간 고추장이 묻었는것 같지 않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