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금연소동
- 작성일
- 2002.03.21 16:31
- 등록자
- 김정희
- 조회수
- 649
'나는야, 끊고 말리라. 담배를 끊고 말리라~~~' (흙에 살리라 version)
매년 새해를 맞을때마다 남편이 흥얼거리는 노래였어요. 그런데 하루, 이틀은 무사히 잘 넘긴다 싶더니 그 魔의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여보, 손 떨려서 도저히 안되겠어. 담배 어디 숨겨놨어, 한개비만 줘."하며 결국 작심삼일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작년 초 저는 아침상을 준비하다 그만 '우~욱'헛구역질을 하고 말았습니다. 밥상 차리는 걸 잠시 스톱하고 달력의 날짜를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짚어보고, 매달 고정적으로 해야할 달거리도 지나쳤다는걸 확인한순간 그만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꿈에도 생각해 본적 없는 임신, 바로 임신이었거든요.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고, 또 삶의 터전을 울산에서 고향인 이곳으로 옮긴지 얼마되지않아 숨통이 트일새가 없었는데, 덜컥 임신이 되었던터라 '확신 반, 의심 반'의 심정으로 아침상을 물리자마자 병원에 갔어요.
초음파로 '쿵쾅쿵쾅' 힘차게 뛰는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잠시잠깐 가졌던 임신에 대한 회의는 멀리 사라지고 생명에 대한 경건함과 감사함이 마음을 가득채우더군요. 그날오후 남편에게 임신임을 알렸더니 제 남편 하는 말, "우리집은 딸이 귀한데, 이왕이면 공주였으면 참 좋겠다"하길래,저는 남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당신이 이 참에 담배나 끊었으면 원이 없겠어."하고는 수화기를 내렸어요.
그날 저녁 퇴근해서 들어온 남편은 제게 호언장담하더군요. "여보, 마누라~. 내 당신과 뱃속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언들 못하리. 내 이순간부터 당장 담배와 연을 끊고야 말겠네.", "정말? 자신있어? 물론 하루이틀은 무사히 잘 지나가겠지~이. 하지만 그 다음부터 손 떨린다고 또 찾는거 아니야."했더니, 제 남편 하늘같은 서방말에 고분고분하지는 못하고 초를 친다며 한번 잘 지켜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남편말대로 잘 지켜보는데, 영락없이 하루이틀은 물 흐르듯 잘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의 3일, 세쨋날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심히 지켜봤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듯 그냥 지나치더군요.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어머님과 아들녀석, 저는 너무X2 신기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나흘째 되는날 남편은 또 담배의 유혹을 뿌리지치지 못하고 손이 떨려 안되겠다며 한개비, 두개비 피우고 말더군요. 예전엔 저와 아들아이는 안중에도없이 방에서 '푹,푸욱'피우곤 했는데, 제가 임신중이라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베란다에서 드넓은 초원을 바라보며 담배를 벗하는 남편을 보니 처량하기도 하고,남편과 담배는 땔래야 땔수없는 찰떡궁합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제 남편 제게 느~을 하는말 "여보. 믿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집에 새사람이 태어나면 그때는 정말 안필게"하길래, 저는 듣는둥마는둥 하면서 "뭐,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어."라는 볼멘소리를 하곤 했지요.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아 전 출산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대요. 딸을 낳았다는 말에 입이 귀에 걸린 남편은 회복실로 돌아온 제게 "수고했어. 나중에 공주 손 잡고 결혼식장 들어가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내 이번엔 말로 안하고 행동으로 보일게"하길래 무슨 말인가 했더니, 퇴원해서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남편은 담배의 담자도 몰라요. 대신 아들녀석과 함께 군것질을 즐기는 바람에 안그래도 올챙이처럼 볼록한 배가 더욱 볼록해져 작아질줄을 모르네요. 얼마전엔 제가 은근슬쩍 다용도실에 숨겨둔 재털이를 거실 탁자에 떡하니 올려나 봤는데, 제 남편 거들떠 보지도 않대요. 아무튼 저와 결혼을 하고 해마다 금연과의 전쟁을 벌이던 남편이었는데, 그 좋아하던 담배를 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우리집 복덩이, 제 딸 지현이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 지현이가 태어난 후로 모든 일들이 순풍에 돛단듯 술술 잘 풀리는 걸 보면 말이에요. 즐오두 애청자분들중에 애연가 남편을 둔 분이있다면 늦둥이를 한번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거기다 첫 아이가 사내녀석이라면 더욱 말이죠.
추신: 올해 들어 금연열풍이 식지 않고 있잖아요. 제 남편 역시 당당하게 한 몫을 담당하고 있지요.
방송은 자주 듣지만 글을 올리는 건 처음인데, 무척 긴장되고 떨리네요. 아무튼 방송이 된다면 더욱 좋겠지만, 안되도 더욱 정진하여 좋은글 올릴것을 약속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