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보고 우는 사람.
- 작성일
- 2002.03.29 01:23
- 등록자
- 김동영
- 조회수
- 651
몇일전 생살을 찢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몸부림치는 아내를 입원시켰습니다만, 완전 회복을 바랄수 없는 병이기에, 진통제를 맞고 두줄기의 뜨거운 눈물로 벼개잎을 적시며 가까스로 잠이드는 헬슥한 몰골의 아내를 뒤로하고 천근같이 무거운 발길을 옮기는데 옛말이 생각났습니다. "먹고 죽은 귀신은 화색이 난다"는.
그 옛날 얼마나 헐벗고 굶주린 나머지, 이왕 죽을 목숨이라면 먹고싶은 것이나 원없이 먹고 가라는 뜻이였을지.. 마음이 아립니다.
저 결혼한지 30여년,,
가난한 농가, 여섯동생을 둔 7남매의 장손이었던 저와
중매로 결혼한 아내는 신혼초부터 열식구가 넘는 대 가족의 고된 시집살이에 살어름판을 걷듯 조심스러웠고 허기진 배를 찬물로 달래는 고통을 격어야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제가 큰병을 앓아 1년을 누워 있을땐, 농촌의 날품을 들어 약값과 생계를 이어갈때 곱든손이 군살투성이로 바뀌었지만,
"지금은 우리 너무 힘들지만, 미래에 대한꿈은 높은곳에 두고 현실을 내려다보고 살아요" 오히려 나를
위로하던 아내!..
50평생을 내 가정을 위해 밑거름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주던 아내가 심신이 너무지쳐 자리에 누운 지금에서야, 아내의 가슴에 지울수 없는 상처가 된, 한두가지가 아닌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군요.
이십수년전 입덧하던 아내가 소고기 국밥도 아니고 통닭도 아닌. 보리밥 한그릇 배불리 먹고 싶다든. 그 원을 못들어주고 머얼건 나물죽 죽사발을 앞에두고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 모습이 오늘밤. 목에걸린 생선가시마냥 따끔거립니다. 배움도 기술도 없는 저를 만나 세상의 모진 풍파에 부대끼여 남다른 고생을 하면서도 한마디 불평없이 "우리 분수에 맞게 살자" 며 오직 검소함과 절약으로 애들한테도 얻어온 헌 옷이지만, 깨끗이 빨고 기워입히며, 알뜰히 살아온 아내 덕분에, 무일푼으로 시작한 살림이지만, 내집마련과 종손의 책임과 도리를 다할수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가 밥걱정 않고 먹고 살만하니. 흰이밥을 앞에두고도 먹을수 없어 밥상 앞에서 때로는 통곡을 하고, 식구들의 마음 상할걸 생각해 혼자서 소리죽여
웁니다. 또 하나 수삼년전 제가 회사다닐때 10년 이상 모법 사원을 뽑아 부부동반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어서 평생처음 비행기를 탈수있게 되었다고 어린애같이 좋아하든 아내였는데..때마침 어머님 병환으로 입원하시게 되어 그 기회마저 놓쳤습니다.
그러면서도 행여 어머님 마음상하실까 내색조차 않고 간호를 했는데, 문득 열려진 병실 창문을 넘어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에 자석에 끌린듯 창문가에 다가서서 푸른 창공에 시선을 주던 사람..
그때 나는 이다음 꼭 한번 시간을 마련하리라 생각했느데 그것이 어렵더군요.
결혼식도 구식으로 조촐하게 올린만큼. 신혼여행도 못갔고 애들 자라고 공부시키고 종손의 책임과 도리를 먼저 생각해보니 항상 우리일은 뒷전으로 밀리고 외식 한번 못했습니다.
" 누군가 할일이면 내가하자 "
" 언젠가 할일이면 미루지 말자 "
" 어차피 활일이면 지금 하자"
오래전 자원봉사활동 교육을 받으러 가서. 이런 글귀를 적어와 크게 써 붙여두고, 때로는 늑장부리고 싶을때마다 다시 외우며 할수 있는한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두서없이 쓴 저의 이글이 방송 된다면, 아내에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제 아내의 조속한 쾌유를 함께 빌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