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 황새 따라가다(?)
- 작성일
- 2002.04.03 16:43
- 등록자
- 정정숙
- 조회수
- 778
며칠전 오랜만에 아들녀석을 대동하고 사촌언니집에 갔었어요. 형부가 쉬는날이라며 저희 모자를 반갑게 맞아주시더군요. 그동안 뵐 기회가 별로 없어 처음엔 서먹서먹했지만, 그날 저는 언니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은 형부의 방정한 품행을 직접 볼 수 있었어요. 몇시간에 걸쳐 살펴본(?) 저희 사촌형부 역시나 경상도 남자의 표본, 제 남편과 극을 달리며 포근한 모습을 드러내시더군요. 자근자근 건네는 부드러운 말투, 차인표씨 더러 매너 차라고 한다지요. 저희 형부 한마디로 매너 kim이었답니다. 그 모습이 비단 저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닌 평소 두 분이 살아가는 모습이란걸 알 수 있었죠.
집에만 있기엔 봄 햇살이 너무 아까워 외출을 하게 됐어요. 언니가 조카에게 옷을 입히는 동안 우리 형부 우유병, 기저귀 준비하고, 보온병에 물담고, 아무튼 조카를 안은 언니가 다리를 구부려 신발을 신을수 없자 '왕비마마 고운 발 내미소서. 신발 여기 있사옵니다'하는듯 손수 언니에게 신발을 신겨주는거 아니겠어요. 내심 속으로만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는데, 형부가 주차장으로 간 사이 부지런한 제 입이요. "언니, 저런 남편이 어딨어. 우와, 정말 최수종이 따로없네. 언니는 정말 싸울 일이 없겠다, 정말 부럽다.", "얘는 부부가 살면서 싸울 일이 왜 없어. 가끔 토닥토닥 다투기도하지만, 평소 형부 모습을 보면 나는 남편 복은 있다고 생각해."하며 얌체처럼 얘기하는거 있죠.
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동안 신호받으면 살살 멈추고, 신호가 바껴 앞차가 제때 출발 안할때도 몇초를 기다리는 여유도 보이며 부드럽게 출발하고. 저요, 또 우리집 남자랑 당연히 비교를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외출 준비하느라 허둥대는 동안 우리집 남자, 자기옷만 달랑 챙겨입고 나가서 차 시동걸고, 저와 아들녀석 모습이 금방 안보이면 빨리 나오라는듯 경적소리를 울려대길 여러번, 신호대기하다가 노란불에서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앞차가 얼른 출발 안하면 '빵빵' 경적을 울려대지요.
그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했어요. "자기야. 형부는 의찬이가 큰 볼일 볼때 뒷처리 다 해주고, (거기다 보지는 않았지만, 한 술 더떠) 언니가 집안일 하는동안 혼자서 슬아 목욕도 참 잘 시키더라." 제 말을 듣는건지 마는건지 밥 숟갈만 입으로 가져가던 제 남편. 두 분 우리집 남자요, 평소 아들녀석이 하는 재롱들 둘이 보기엔 아깝다며 주절주절하지만, 아들녀석이 밥을 잘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응가하면 냄새가 심하다며 저 멀리 달아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같이 밥 먹던 아들녀석이 "아빠, 쉬~이, 쉬~이"하니까, 얼른 화장실 데리고 가더니 변기 앞에 세숫대야 엎고,그 위에 나무 빨래판 올리고, 또 그 위에 자랑스런 우리 아들 떡하니 올려놓고 볼일을 보게 하더군요. 거기다 녀석이 "아빠, 으~응"하니까, 덥석 안고는 볼일을 보게 하고 깨끗이 뒷마무리도 하고. 지켜보던 저 웃음이 터져 나와 혼났습니다. 그 다음날 제 아들녀석 어제의 기억이 남아서 쉬는 아빠가 가르쳐준대로 해야된다며, 아빠와 쌍곡을 이루는 고집을 부리는데, 저 두손 두발 다 들 지경에 이르더군요.
두 분 사람사는게 다 같을 순 없지만, 비슷한 것 아니겠어요. 이렇게 사는것도 재밌고, 저렇게 사는것도 재밌지요. 무뚝뚝하고 성격이 급한 단점을 가진 제 남편이지만, 산처럼 듬직하고 바다처럼 깊고, 넓은 마음의 소유자랍니다. 저는 그런 남편을 영원히 사랑하며 살아갈랍니다. 사랑스런 내 웬수(?)를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