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에 통멸치는 NO!!!
- 작성일
- 2002.04.29 16:56
- 등록자
- 정미영
- 조회수
- 654
두 분 안녕하세요?
한달전 결혼해 한창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을
사촌동생을 생각하며 전화를 넣었더니 의외로
풀이 죽은 목소리로 하소연을 하더군요.
사연인즉은 입이 짧은 제부때문에, 매일 찬거리가
걱정이라나요. 그러면서 며칠전엔 반찬투정하는
제부때문에 처음으로 부부싸움이란걸
했다더군요.
저는 반찬 투정은 초장에 잡아야 한다며 동생에게
훈계아닌 훈계를 하고 수화기를 내렸어요.
그러고보니 문득 제 신혼때가 생각이 나는군요.
결혼하기전 직장생활을 한다는 핑계로 손에
물한방울 묻히지 않고 결혼을 한 저는
사랑하는 낭군님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정성껏
끓여 상에 올렸는데, 남편은 한숟갈 뜨다 말고
그만 숟가락을 '탁'하며 놓아 버리더군요.
저는 "왜그래~ 속이 안좋아. 자기 찌개나 국 없으면 밥 못먹는다며. 왜, 맛없어.'했더니,
제 남편 "너도 눈 있으니까 봐봐. 저거 뭐니? 멸치 안 보여, 어휴 비린내~. 너나 많이 먹어."하는 거에요.
다시물을 우려내고 멸치를 체에 다 건져 낸줄
알았는데, 뚝배기를 바라보니 야채와 고기속에
커다란 멸치 한 마리가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더군요. 저는 남편이 외면한 된장찌개속의
멸치를 젓가락으로 쑤욱 건져 자그마한 제 입에
넣고 오드득오드득 맛있게 씹으며 "그렇다고 숟가락을 놓냐. 비린내는 무슨 비린내가 난다고 그래
맛만 좋구만. 어머님은 아들을 뭐 저렇게 키웠어."
라는 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 등 뒤로 뭔가가 휙하고 날아 오더니, 거실
구석으로 휜 줄을 만들며 나뒹굴더군요. 바로
두루마리 화장지였어요. "너, 방금 뭐라 그랬어.
거기에 왜 우리 엄마를 들먹여. 내가 누누히
말했지. 나는 된장찌개에 통멸치 들어가는 거
정말 싫다고. 뭘 잘했다고 궁시렁 거리는거야."
저는 바른 말하라고 있는 입을 통해 단지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그날 저희부부
결혼하고 처음으로 이판사판 합이 여섯판
그러니까 대판 싸웠습니다.
눈물에 콧물을 빼던 암탉의 목소리가 그것도
서럽게 엉엉 우는 소리가 담벼락을 넘었답니다.
부부싸움 하더라도 짐싸는 일은 내 사전엔
결코 없을거라고 자신만만했었는데, 웬걸요.
저는 당장 입을 옷가지들을 챙겨 밖을
나오고 말았어요. 저의 심란한 마음처럼
차가운 날씨속에 횡하니 바람은 불고, 친정에는
갈 수 없고, 친구집에 가자니 자존심이
허락질 않고, 무작정 버스에 올랐어요.
'남편의 섭한 말과 행동을 생각말자, 생각하지
말자'라는 머릿속의 주문과는 달리 차창에 비치는
제 마음의 일그러짐은 눈물로 뚝뚝 발산되고
있었어요.
그렇게 종점을 몇번 왔다갔다 했더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어섰더군요.
결혼한 여자는 왜 그리 갈 곳이 없는지
결국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는데, 적(?)이
있는 우리집이었어요. 퉁퉁부은 얼굴로
터벅터벅 골목을 들어서는데, 가로등 불빛아래
웬 산만한 덩치의 남자가 모락모락 담배를 피우고
있더군요. 단번에 남편임을 알 수 있었지만,
모르는척하며 골목 가장자리를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음을 옮기는데, "장모님께 전화드려도
안왔다던데, 어디갔다 이제 와. 얼마나 걱정
했는데."하면서, 이 남자 아무일 없었다는 듯
제 어깨에 손을 올리는데, 어찌나 기분이
나쁘던지 그 손을 세차게 뿌리치고 집에 들어
왔어요.
몇시간전 이리저리 나뒹굴던 그릇과 음식물은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말끔히 치워져 있었어요.
"미안해. 내 다른건 다 고칠수 있지만, 된장
찌개에 통멸치 들어가는 건 좀 봐주면 안되겠니."
그 말을 시작으로 남편은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고, 그런 간곡한 남편의
행동과 말에 저는 지난 일을 잠재우며 또 다시
엉엉 울고 말았어요.
그날밤 그의 품에 안겨 잠들기까지
어떻게 하면 남편의 입맛을 고칠수 있을지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뾰족한 묘책이 안서더군요.
'된장찌개에 통멸치가 들어가면 안된다'
삼십년 넘게 길들여진 입맛인데, 제가 지혜로운
주부가 되는 수밖에요.
그후로 된장찌개 어떻게 끓이냐구요. 다시용
멸치를 볕에 바싹 말려 분마기에 적당히 갈아
국물로 우려내서 먹고, 칼슘의 보고 멸치를 딸아이
와 셋이서 오드득오드득 맛있게 씹어 먹는 답니다.
남편에게는 멸치의 원형만 안보이면 되니까요.
살림은 할수록 느는 법이고, 그러면서 지혜로운
주부가 되는거지요.
추신: 용수님, 사투리에 약하신거 같아서 표준말을
구사했습니다.
만약 이 방송 제 남편이 듣는다면 쥐구멍을 찾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비온 후 땅이 굳듯 저희 부부 그날후로 12년째 사랑을 속삭이며 잘 살고 있습니다. 두 분도 오래도록 명콤비로 남아 주세요. 즐오두 잘 들을게요.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