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친구
- 작성일
- 2002.05.01 15:28
- 등록자
- 최성숙
- 조회수
- 612
아침부터 내리는 반가운 봄비를 촉촉히 머금고 있는 아카시아 미소를 한껏 느끼고 있노라면 더욱더 싱그러운 향기에 어느덧 회색빛 도시는 상큼한 봄의 도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기분이 조금은 설레이는 날이면 전 차분히 추억의 조각들을 한조각씩 꺼내어 보며 명상에 잠기기도 합니다.
그런 조각들 중에서 어느덧 제 마음속 깊이 자리잡아 문득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낯선 이웃사촌이란 이름으로 만났지만 끼니 때우기도 바빴던 저에게 사람의 정이란 세상 가장 큰 보석을 선물로 주었었죠.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철이 없다면 없는 20대 중반에 가까운 나이 생판 모르는 집에 시집을 간 저는 그때부터 살림을 알뜰이 꾸려가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습니다.
겨우 몇평짜리 단탄방에서 살던 저는 남편이 공장을 나가면 참기름 한방울이라도 적게 쓰는 방법...쌀 한톨이라도 아끼려고 노력하며 일상속을 살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이사도 어찌나 많이 다녔었던지요...
그렇게 몇년의 결혼생활을 힘들게 하던 저는 저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한 옆집새댁을 만났어요...
처음엔 그저 낯설게만 느꼈기에 쉽사리 다가서지 못했지만, 말을 터놓고 보니 나이도 같고 해서 어느 덧 너무나도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혼자서 힘들어 하면 누구보다도 의지가 되어주는 친구덕분에 전 미소를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가 생겼고 저는 딸을 친구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헌데 참 묘하게도 남편이 장손인 전 아들을 원했고, 친구는 딸을 원했었어요.
그 사실을 알고는 참 많이 웃기도 했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똑같은 자식인데 말입니다.
여하튼, 그렇게 다시 세월이 흘러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저희는 다시 아이를 가졌습니다.
'첫아이도 비슷한 시기에 가져서 출산을 했는데 둘째도?'란 생각이 들자 전 처음으로 인연이란 단어를 떠올렸고 그것을 믿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던 것은 제 인연인 친구가 너무나도 좋은 친구였다는 것입니다.
친구와 전 서로 축하를 하며 이번엔 정말 전 아들을 친구는 딸을 낳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던 것이었을까요?
무슨 소리냐구요...임신초기 같이 장을 보러 갔다가 야채를 파는 나이 많은 할머니의 비방아닌 비방을 듣고난 저희는 바로 실행에 옮겼던 거죠...
그건 그당시 주로 남자아이들에게 자주 신겼던 하얀 고무신에 서로의 아이의 이름을 적어 바꿔신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제 친구아들의 이름이 적힌 고무신을 딸아이에게 신겼고, 친구는 제 딸아이의 이름이 적힌 고무신을 아들에게 신겼어요.
저희 두 사람은 흰고무신을 신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병아리같이 귀여운 자식들을 바라보며 출산일을 기다렸고, 드디어 산고의 고통이 찾아오더군요.
그리고 비록 약하기는 했지만 전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도 딸을 낳게 되었죠.
보통 필연은 우연을 가장한다고 하지요? 전 그때 그 말이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었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필연을 느끼며 앞으로도 계속 그 인연이 이어지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사람사는 것이 다 그런건지 인연이 다한건지 친구가 이사를 하게 되었다는 소리를 하더군요.
정말 태어나 그렇게 섭섭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결국 친구는 이사를 가면 연락을 한다는 약속과 함께 다른 곳으로 가버렸죠...
하지만, 전 그 친구의 연락을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 역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기 때문이죠.
그렇게 연락이 끊긴지도 벌써 20년이 조금 안되네요.
전 무럭무럭 별탈없이 크는 제 자식들을 보면 가끔은 그 친구의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혼자 상상에 빠지기도 하고,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창가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으며 비오는 날엔 언제나 친구가 해주던 파전의 맛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생각난김에 오늘은 파전을 해서 아이들과 간장에 찍어 맛있게 먹어야 겠습니다.
친구야, 잘 지내고 있지? 비록 연락은 안되지만, 그래도 내겐 소중한 너였기에 추억을 하는 것이 기쁘기만 하구나...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라...친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