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당번
- 작성일
- 2002.05.09 08:02
- 등록자
- 정옥희
- 조회수
- 578
교통 당번
오늘 아침에는 학교에서 야영을 간다고 일찍 일어나는 아이가 대견해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느새 자라 초등학교 5학년, 다른 아이들 보다 한살 어린 탓인지 아직 어린티를 벗지 못했다. 며칠 전 학교에서 차례로 돌아가면서 하는 교통 당번을 섰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뒷날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1학년 때는 교통 당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통안전 교육도 받지 않았는데 우리 반 엄마들이 모자란다고 별일 없으면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꺼이 승낙을 했던 것이다.
당번첫날 여덟시 까지 학교 앞 건널목에 서서 녹색 앞치마를 두르고 노란 깃발을 잘 조절해서 아이들을 건너 주어야한다.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차가 오지 않으면 아이들이 마구 뛰어서 건너는 곳이었다. 나는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녹색 앞치마가 어색하기도 하고 지나는 차량을 막고 아이들을 건너 주는 일도 그렇고....
내가 노란 깃발로 차량을 막아도 어떤 차들은 그냥 지나가 위험하기도 했다. 당황해 하는 나를 아이들은 멀뚱멀뚱 쳐다볼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서있었다. 여덟시부터 아홉시 까지 어떻게 서 있었는지 모르게 한 시간이 지나갔다.
삼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집이 가까운 나는 앞치마와 깃발을 들고 집으로 오니 자영업을 하는 남편이 아침을 먹으러 와 있었다. 기운 없이 들어서는 내게 잘했냐고 물었다.
“오늘 아침에 아이들을 무더기로 죽일 뻔 했다 아이가. 와, 사람들은 횡단보도 법규도 모르노 말이다.”
“니가 똑 소리 나게 큰 소리로 호각도 불고 야무지게 해야지. 내 아이들이다 생각하고 사랑을 갖고 하면 못 하는게 뭐 있노. 내일 아침에는 내가 가 볼끼다. 잘하나 못하나.”
당번 둘째 날
집에서부터 앞치마를 하고 손에는 하얀 장갑을 끼고, 아이들 장난감에서 호각을 찾아 목에 걸고 창이 짧은 모자를 쓰고, 깃발을 들고 횡단보도로 갔다. 맞은편에는 같은 반 친구 엄마가 어제는 못나와 미안하다며 마주 보며 섰다. 아이들을 건너 줄때는 하얀 손을 번쩍 들고 내가 먼저 앞에 나가서 손짓으로 아이들을 건너가게 신호를 했다. 어제 남편이 가르쳐준 방법이다.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고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아이들을 건너 주고 있는데 “수고 하십니다.”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6학년쯤 되 보이는 여자 아이가 자전거를 밀고 건너면서 내게 인사를 하는 것 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교통 당번을 하는 동안에 아이들에게 인사 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겠다.
가끔 아이 준비물 때문에 학교 앞 문구점에 올 때면 당번을 서는 엄마 옆에 어색하게 서 있었는데....
“안녕, 조금 기다려 아줌마가 건너 줄게.”하면 대부분 아이들이 어색한 듯이 히죽이 웃으며“안녕 하세요” 라고 대답을 했다. 너무 귀엽고 예뻤다.
당번 셋째 날
아침에 10분 일찍 나갔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안녕을 남발했고 메아리처럼 아이들은 안녕 하세요,를 되돌려주며 웃었다. 팔랑개비처럼 아이들은 내 옆에 머물다 내 손동작 하나로 건널목을 건너갔다. 나는 사흘을 더 하겠다고 자청을 했고 예정일 보다 일주일을 더했다. 이제 아이들은 아줌마들을 보면 안녕 하세요,를 자연스럽게 했다. 처음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들을 왜 했는지 남편은 교통안전 교육을 정식으로 공부해서 교통 지도를 하는 게 어떠냐고,
당신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아끼지 않는다. 길에서나 슈퍼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들이 나를 보고 먼저 인사한다. 아이 엄마가 누구냐고 물으면 “응, 교통 서는 아줌마” 라고 하는 말이 내 귀에 들린다. 싫지 않는 기분 좋은 소리다. 내 것만 소중히 여기는 요즘에 내가 한 이 인사 한마디가 아이들에게 서로 먼저 기쁨을 주는, 그래서 서로의 마음에 즐거움을 더 하는 날 들이 많았으면 한다.
나 또한 내 아이로 통해 소중한 추억을 만든 것 같아 즐겁다.
오늘 2박 3일 야영이 처음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다. 아이의 더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추신: 매일 아침 운동을 다니는데 건널목을 건널 때는 항상 아이들 손을 잡아주는 습관이 생겼어요. 좋은 습관이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