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휴일
- 작성일
- 2002.05.09 13:36
- 등록자
- 김정숙
- 조회수
- 644
지난 일요일 저희 가족은 시골에 있는 큰집에 다녀왔습니다.
시아주버님은 저희 집에서 차로 한시간 정도 걸리는 시골에 살고 계십니다.
앞개울에는 피래미 등의 물고기가 노는 모습들을 볼 수 있을 정도의 맑은 물이 흐르고 시내버스도 하루에 한 대밖에 다니지 않는 산골 오지랍니다.
이런 시골에서 시아주버님은 담배 등의 밭작물 농사를 짓고 계신답니다.
조카 되는 아이들은 시내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니고 있다가 큰일이 있을 때면 모두 시골로 모여듭니다.
큰집에는 이미 조카들과 조카사위도 들어와 있었습니다.
올해는 큰 질녀의 세 살 백이 딸 지영이도 새 식구가 되어 시골로 들어 왔습니다.
아침밥을 먹은 우리는 밭으로 향했습니다.
남편에게는 모종을 옮겨 심을 구덩이를 파는 일이 맡겨졌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홑빠'라는 것으로 그 일을 했으나 올해는 그 일을 아주 쉽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기구로 하였습니다.
"야! 일이 굉장히 쉬워졌는데!" 하면서 남편이 파놓은 구덩이에 아이들과 저는 담배의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아침에 일을 시작할 때는 "언제 이 큰 밭에 모종을 다 옮겨 심을까?" 라는 마음을 가지고 했었는데 밭둑에 둘러앉아 새참도 먹으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이 늘어만 갈 때는 그 큰 밭의 반은 어느새 산들바람에 춤을 추는 파릇파릇한 담배모종들로 가득 차가고 있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도 힘들지도 않은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거뜬히 한몫을 거들었습니다.
형님께서 점심을 머리에 이고 오셨을 땐 담배 모종은 거의 밭의 반을 다 채울 만큼 다 옮겨 심어져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는 밑으로 남은 밭의 일을 모두 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만 내일 '놉'을 써서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즘의 농촌은 나이 드신 분들만 계셔서 '품앗이'도 안되기 때문에 사람을 사서 쓰는 '놉'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실직하신 분 몇 분을 데려다 일을 시켜 보았는데 조금 일을 하더니 간다 온다 말도 없이 그냥 가버렸다는 말씀도 하시더군요.
아마 일이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번에는 '놉'일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만 쓰기로 하셨다고 그러시더군요.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점심을 먹은 그릇들을 챙겨서 집으로 내려 왔습니다.
설거지하는 것이 밭 일 하는 것보다는 쉽다는 형님의 말씀에 의해서 였습니다.
설거지를 끝내고는 조금 쉬다가 저는 아이와 같이 다시 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밭에서는 이미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와 제가 오는 것을 보신 시아주버니께서는 "어이구 우리 수야가 오늘 어린이 날인데도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애쓰는 구나! 제수씨도 힘드시지요? 천천히 쉬엄쉬엄 하세요."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역시 일은 오전과 마찬가지로 담배 모종을 남편이 파놓은 구덩이에 옮겨 심는 것이 저와 아이들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지만 농사일은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딴에는 요령을 좀 피워도 가면서 일을 하였으나 팔 다리의 힘이 쭈욱 빠지며 허리가 뒤틀릴 듯이 아파 왔습니다.
이런 저의 상태를 어떻게 알았는지 남편은 "나도 천천히 나갈 테니 슬슬 따라 오이라!"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남편도 꽤 힘이 들었던 것 같았습니다.
농사일을 할 때면 늘 느끼는 것이었지만 그 힘든 일을 조카들은 요령도 않피우고 잘도 하데요. 명색이 숙모인 나는 그 조카들만도 못하게 틈만 나면 잠시잠시 그렇게 쉬었습니다.
아니 쉬지 않고는 못 베길 정도 였습니다.
그렇게 일년에 몇 번 해보는 농사일, 그것이 정말 힘이 들었지만 건너편 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숨어 들 듯이 어느새 담배 심는 일도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형님과 저는 저녁을 하기 위해서 얼른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 뒤 텃밭의 비닐 하우스에서 보들보들한 상추도 뜯고 앞개울에다 놓은 통발로 잡은 고기로는 물고기국도 끓였습니다.
이렇게 장만한 저녁을 먹는 중 시아주버님께서는 "이제 내일 하루 '놉'만 쓰면 큰일은 거진 다 되는 구나! 그 다음은 우리 둘이서 슬슬 하면 될 끼고......"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모두 이 저녁에 도시로 나가면 형님내외 두 분께서는 천 날 만 날 하시는 그 일을 이제 또 두 분 만이서 하실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수야가 오늘 어린이날 정말 수고했구나. 많이 힘들 제? 그 힘든 일을 큰아버지께서는 평생을 하신 단다. 우리는 오늘처럼 이렇게 하루만 하면 되지만!"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농사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단다. 수야 너는 이런 기억들을 어른이 되어서도 늘 간직하도록 하여라."는 말도 하였습니다.
남편은 아이가 듣기에는 다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