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의 사죄
- 작성일
- 2002.05.15 22:50
- 등록자
- 김정현
- 조회수
- 645
즐거운 오후 두시 변함없이 즐겁게 잘 듣고 있답니다. 어제가 스승의 날이었죠?
두분은 학창시절 기억나는 선생님이 계시나요?
저한테도 잊혀지지 않는, 아니 꼭 용서를 구하고
싶은선생님이 한분 계십니다. 중3때 담임선생님이셨는데,
새카만 머리카락에 반곱슬이시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키에 피부는 하얗고, 영어과목을 담당하셨어요.
참 멋있는 선생님이셨지요.. 적어도 지금생각하면요.
중3때 아버지를 여윈 저에게 항상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라며,
써주신 장문의 편지를 저는 아직도 갖고 있는데, 그래서 그 선생님을 잊을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때는 중3 사춘기였고, 아버지를 여윈 충격때문이었을까요, 삐뚠 생각으로 선생님을 무척 싫어했었어요.
하루는 수업중이었는데, 선생님께서 문제풀이를 하던 도중 잠시 착각하셨는지, 틀리게 문제를 푸는 것이었어요. 저는 그때 " 선생님이시면서 그것도 모르냐"며 선생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많은 반친구들 앞에서 선생님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말았지요.
지금도 생각하면 정말 가슴 뜨끔하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선생님께 죄송스러워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화가난 선생님은 급기야 반전체 벌을 세웠고,
그렇게 수업은 엉망으로 끝이 났어요.
졸업후에 몇번이고 선생님을 찾아가야지 마음먹었지만
쉽지 않았고, 그렇게 어느덧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그러던 중 작년 스승의 날 즈음, 인터넷에서
은사님 성함만 치면 찾을 수 있다는
사이트를 알게돼,
선생님 성함을 치니 전국에 같은 성함의 선생님이
네분 계시더라구요. 그래서 담당과목과 나이를 보고
대구 모 여고에 계신다는 것과 전화번호를 적어두긴 했지만, 그때도 역시 용기를 못냈었어요.
언제까지 미룰 수 만은 없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어요. 그래서 메모해두었던 수첩을 꺼내 선생님께서 계시다는 학교로 전화를 걸었어요.
"은사님을 좀 찾고 싶은데요...." 어디론가 전화가 돌려지고 잠시후에 "여보세요" 하는데, 정말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나더라구요.
"선생님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눈물젖은 목소리로 말씀드리니, 아니다며 되려 연락줘서 고맙다고 그러시면서, 지금껏 쭈욱 여학교에만 있었더니 연락오는 제자가 많이 없다구요, 사실 남학생들은 졸업하고 애기 아빠가 돼도 옛 은사님을 많이 찾아뵙고, 선생님과 함께 술자리도 함께 하며 학창시절 얘기도 하고 그러는데,
여학생들은 연락 잘 하다가도 대학가서 남자친구만 생겼다하면 연락이 뚝 끊어진대요.
스승의 날이라지만 선생님은 평소보다 더 쓸쓸하게 보내시는구나 생각하니, 더 죄송스럽고, 한편으로 용기를 내서 전화를 드리길 잘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조만간 선생님을 한번 찾아뵙고 싶네요.
그러고 보면 지금 선생님 연세가 마흔일곱이신데, 15년전엔 지금의 제나이셨던거 있죠?
지금 선생님께선 어떤 모습일까??? 15년이란 세월이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인데, 그래도 선생님께선
변함없으시겠죠?
제 마음에 그려져있는 선생님이랑 말예요.. 얼른 뵙고 싶네요.
따스한 격려한마디, 칭찬한마디가 한사람의 인생을 바꿀만한 충분한 힘이 있다죠?
저역시도 선생님께서 그때 저에게 써준 따뜻한 격려의 편지는 살아가는데, 큰힘이 되고 있답니다.
올해는 또 다섯살 난 큰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해서 스승의 날을 맞고보니, 선생님들이 정말 큰일을 하고 계시고, 얼마나 수고 많으실까 생각이 들었어요
이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박수를 보내드리며,
글을 맺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