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싶은 야유회
- 작성일
- 2002.05.31 09:10
- 등록자
- 박 유 자
- 조회수
- 594
야유회
언제나 그랬듯이 늦은 봄에는 같이 일하는 식구끼리 야유회를 갑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날짜를 잡고 사람들은 차례로 뭘 해가면 좋겠냐고 물어 오지만 해 가지고 가는 것은 똑 같습니다. 돼지고기 양념에 상치 쌈 입니다. 풋고추도 좀 사고 과일은 푸짐한 수박 두 덩어리 마른 반찬 두어 가지 정도에 소주가 빠질 리가 없습니다. 죽장 쪽으로 냇가에서 하루 놀다가 오기로 했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보경사로 장소를 바꾸어 아침 9시 30분에 출발을 했습니다. 거리가 가깝던 멀던 우리 아줌마들은 상관이 없습니다. 가족과 함께 그것도 여럿이 모여 놀러 간다는 게 즐거움의 하나이니까요.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들도 많이 변했습니다. 처음 십년 전에는 같은 동네에서 일하는 사람들 끼리 모이면 아이들이 주렁주렁 달려 죽장이나 상옥으로 놀러 가더라도 아이들 챙기느라고 하루해가 다 갔습니다.
그 세월이 십년 강산이 변한 사이에 아이들은 다 커서 따라 가지 않으려고 하고 부부 들만 나서니 그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많이 변했다는 걸 느낍니다. IMF 가 우리 서민들에겐 많은걸 잃게 하기도 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김씨 아저씨는 부인과 이혼해서 아이들과 같이 힘들게 살고 있고, 같은 친구로 지내는 손씨는 어느 날 부인이 친정으로 가서 같이 안 살겠다며 지금 버티고 있는지가 일년이 다 되어 갑니다. 자기 남편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요. IMF가 여자들에겐 더 큰 소리를 내게 하고 남자들은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우리 아내들이 정말 용기를 가지고 남편의 어깨를 가볍게, 말이 라도 포근하게 했으면 하고 차를 타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했습니다.
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누구네 결혼식이니 누구는 시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오지 못했다느니 사소한 말들이 오가며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누구 집 아이는 공부를 잘해 좋겠다는 말들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도착한 시간은 아직 조금 일찍 하다고 생각되는 오전 열한시,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보경사 경내에 깔린 자갈들이 빗소리에 깨끗하게 씻겨 우리의 마음도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비 때문에 등산은 할 수 없고 절 안 밖을 돌아보면서 우리들 오는 하루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 갈수 있도록 잘 돌봐 달라는 부탁도 했습니다. 즐거운 점심시간 방 한 칸을 빌린 민박 집에서 고기를 굽고 상치 쌈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우리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밥은 안 먹고 아침부터 소주만 먹던 정수 아빠가 울음을 터트린 것입니다. 이십년을 살 맞대고 같이 살아온 부인이 월급쟁이 봉급으론 도저히 아이 키우며 살수 없다는 핑계로 친정에서 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소심한 이 사람은 다른 부부들의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보고 서글퍼진 나머지 남자가 울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와서 내가 무엇을 해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느냐고... 도둑질도 재주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가난 하지만 행복하게 산다면 그것이 삶에 전부 아니까요.
돈 마음대로 쓰고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다른 사람들도 비가 오는 처마를 보면서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지금까지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라 누구는 빼놓고 올수가 없어 같이 왔지만 마음을 상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참 후 다 털어 버리자며 근배를 권했습니다. 타지에서 만나 친구가 된 것도 인연인데 서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돕자고 서로 이웃사촌 아니냐며 권 하는 소주잔에는 사랑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우리 남편 같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어둡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부로 인연 맺었으면 남편이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한 서로 아껴주며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정이 어려운데 남편에게만 미루어 둔 다면 그것은 이미 부부가 아니라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정말 한 마음이 되어 불렀습니다. 건강한 우리나라를 위하여!
도 빠트리지 않고 외쳤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정수 아빠는 의자에 기대 창밖을 보고 있었고 이번에 돌아가면 뭔가 결정을 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내일 아침 정수 엄마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와 저녁을 맛있게 해 놓고 정수 아빠를 기다리는 꿈을 꾸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