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 축제 덕에 모인 식구들
- 작성일
- 2012.08.01 07:53
- 등록자
- 배경화
- 조회수
- 175
불빛 축제 덕에 간만에 여섯 형제가 모였다. 평상시엔 엄마와 단 둘이 살아 아파트가 넓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직 결혼하지 못한 나를 제외한 다섯 형제들이 각각 세 명의 식구들을 더 불려서 데려 와 스물 두 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복닥거리다 보니 아파트가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 실감났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에어컨을 틀지 않을 수 없다. 낮에는 계곡을 찾아 다니고 밤에는 에어컨으로 버텼다. 하지만 간만에 만난 형제들끼리 웃음꽃을 피우다 보니 무더위도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계절이 계절이니 만큼 우리들은 어렸을 때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했다. 부모님이 바닷가에서 횟집을 하셨기에 우리들은 여름방학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내리 바다에서 수영만 하며 보냈다. 우후의 뙤약볕이 강해지면 만사를 제끼고 바닷물에 풍덩 몸을 담근다. 배가 고파질 때면 집에 몰래 들어와 밥을 후딱 챙겨 먹은 후 또 다시 해수욕을 하다 해가 뉘엿뉘엿 힘을 잃을 때쯤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여름 내내 수영을 즐긴 탓에 개학할 때쯤에 온 몸이 까맣게 거슬려 학교로 돌아가면 얘들이 검둥이라고 놀리곤 했다.
여름 방학을 매번 이렇게 보내는 게 한심해 보였던지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아버지는 언니와 내게 옥수수를 팔면 거기서 나온 수익금의 일부를 준다는 제안을 해 오셨다. 언니와 나는 그 돈으로 팥빙수를 사 먹을 욕심으로 옥수수를 팔기로 했다.
당시 우리 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 친정이 강원도였는데 강원도에서 직접 가져 온 옥수수를 삶아 팔기로 했다. 먼저 아이 팔뚝만한 강원도 찰옥수수를 한 포대씩 무쇠솥에 넣어 푹 삶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때쯤 사카린을 넣어 20분을 더 삶으면 보기에도 쫀득쫀득하고 입에 착 달라붙는 찰옥수수가 삶아진다. 다 삶아지면 뜨거운 옥수수를 목장갑을 끼고 하나씩 꺼내 쟁반에다 담아 식히고 옥수수수염을 대충 벗겨내고 좌판에 진열해 놓고 해수욕장에 피서 온 사람들에게 팔았다.
“강원도 찰옥수수가 하나에 50원. 세 개 100원.” 지금으로부터 25년전, 당시 ‘쭈쭈바’란 게 있었는데 그게 50원이었다. 쭈쭈바 한 개와 같은 가격이었으니 그리 비싼 건 아니었던 듯하다. 장사를 시작할 땐 돈도 벌고 재미있겠다 싶어 뜨거운 백사장을 뛰어다녔지만 옥수수는 팔리지 않고 또래의 아이들이 물에서 노는 것을 보니 옥수수 파는 걸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한다는 아버지의 엄한 가르침과 무서운 얼굴을 떠올리면 감히 그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옥수수를 다 판 날보다 팔지 못한 날이 많았고 그런 날에는 형제들은 하루 종일 옥수수만 먹고 있어야 했다. 그 때 옥수수를 질릴 만큼 먹었서인지 요즘 옥수수를 보면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처음 옥수수 장사를 시작할 때 계획처럼 옥수수 판 돈으로 팥빙수를 사먹지는 못했지만 장사를 하며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고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자식을 공부시키는 부모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 땀방울의 소중함과 돈의 가치를 몸소 체험시키기 위해 일부러 우리들에게 옥수수 장사를 시키신 듯하다.
어릴 때 추억의 보따리가 밑을 다 보일 때 쯤 되니 동생과 언니가 떠나갈 시간이 되었다. 오늘 아침, 새벽 일찍 일어나 출발하는 언니, 동생들을 배웅하니 시원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다 보내고 나니 또 다시 엄마와 나. 둘만 덩그러니 남았다. 보낼 때는 시원하더니 금방 섭섭해지면 또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보게 된다.
어릴 때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이정석의 '여름날의 추억'이 듣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