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미룬다는 것
- 작성일
- 2013.12.24 09:38
- 등록자
- 배경화
- 조회수
- 276
“ 아내는 꽃나무를 좋아해서 다른 집 남편들처럼 집에 꽃나무를 가꾸지 않는 남편을 원망했다. 남편이 아내에게 늙기 전 고향으로 돌아가 집도 짓고 꽃나무를 심을 계획이라고 말하자 아내는 기뻐했다. 그런데 집을 완성하기도 전에 아내는 병에 걸려 죽고 고향집으로 이사 오던 날 아내는 관에 실려 오게 된다. 이에 남편은 언제 죽을 지도 모르면서 계획만 세우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이 일인지 탄식하게 된다. ”
도서실에서 이리저리 책을 뒤적이다 고전수필 한 권을 꺼내 들었는데 그 책에 첫 번째로 나온 이야기였다. 옛날 글이지만 글을 읽으며 남편의 말에 공감했다. 그리고 나 역시 오늘 누릴 행복을 내일로 미루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또는 야망을 이루기 위해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며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간다. 그러다 죽을 병이라도 걸릴라치면 지금까지의 삶을 허망하게 생각하며 과거의 삶을 반성하게 된다. 우리들은 왜 그리 어리석은 것일까?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먼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미루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야기를 읽으며 10여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 떠오르며 저질러서는 안 될 불효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 환갑에 즈음해 환갑 잔치를 조촐하게나마 열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당신은 환갑 잔치가 뭐냐며 자식들에게도 친지 누구에게도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피해를 줄 수 없다며 극구 사양하셨다. 우리들은 자식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거창하게도 아니고 가족들과 가까운 친지들이 모여 같이 저녁 식사라도 하려는 것이라며 설득을 해도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셨다. 할 수 없이 아버지의 뜻대로 환갑 잔치를 할 수 없었다. 못내 서운해하는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요즘처럼 장수하는 시대에 환갑보다는 굳이 한다면 칠순 잔치라도 하자고 하시며 아쉬워하는 우리를 달래셨다. 형제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 칠순 잔치를 계획하며 다달이 얼마씩의 돈을 내어 적금을 부었다.
그런데 얼마 후 아버지께서는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서 간경화라는 진단을 받았다. 몇 차례의 수술 후 아버지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어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칠순 잔치는 무산되었다. 늙으신 부모님을 위해 미래의 계획을 잡는다는 게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 짓인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의 칠순을 위해 부은 적금을 깨어 아버지 병원비를 내며 형제들은 아버지가 그 때 그렇게 반대하시더라도 끝까지 환갑잔치를 해 줄 걸하며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야기 속의 남편은 아내 생전에 가꾸어 주지 못한 꽃나무를 아내의 무덤 주변에 심어 주고 날마다 아내의 무덤에 올라가 꽃나무를 가꾸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아내는 하늘 나라에서 남편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전에 한번 웃는 것만큼이나 행복하겠는가?
내일은 즐거운 크리스마스다.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일 때문에 아니면 그 밖의 다른 사정 때문에 가족들과 헤어져 쓸쓸하게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본인이 선택할 수 있아면 가족들과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나중에 후회가 덜 될 것이다.
오늘의 행복을 자꾸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행복할 수 있다면 실컷 행복하자. 내일일은 기약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길 기원하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신청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