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작성일
- 2015.08.25 00:00
- 등록자
- 이진숙
- 조회수
- 356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버지!
올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몇 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많이 늙으셨다.
올해 연세 76세이신 아버지, 동네에 할 사람이 없다면서 올해는 농수관리를 하시고 계셨다. 동네에 큰 저수지가 있는데, 그 물로 우리 마을을 비롯해 이웃에 있는 논에 물을 대주는 일을 하신다. 내가 어렸을 적, 억수로 비가 오는 날 새벽에 아버지는 비옷이 아닌 하얀 비닐을 온 몸에 감고 논에 나가신다고 엄마가 엄청 걱정하셨던 일이 생각난다. 워낙 책임감 있고 성실하셔서 맡은 일은 철저하게 하시는 분, 올해는 비가 오지 않아 적은 물로 원성이 없도록 골고루 물을 대줘야 하는데, 고생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디스크 수술도 여러 번 하셔서 허리도 안 좋으신데, 우리가 말릴 일도 아니다.
지난 5월엔 아버지의 소원이었던 하나 남은 아들 결혼도 시켰다. 만혼이라 저희들이 알아서 했다지만 아들 넷 중에 셋째인 녀석이 가장 착했던 아들이 가장 늦게까지 장가를 가지 않고 있으니 아버지의 속은 타 들어갔다. 그러다가 좋은 신부 감을 만나 결혼하니 얼마나 기뻐하셨는데, 아버지는 섭섭하신 마음이 더하신 것 같다. 오랜만에 며느릿감을 보시는데 기대가 참 많으셨는가 보다. 당연히 부모니까 그러시겠지. 그런데 너무 철이 든 며느리라 더 어려워하시는데 알아서 아버지께 전화도 잘하고 살갑게 대해 주기를 기대했는데 아닌가 보다. 어느 해 부터인가 아버지는 하나 뿐인 딸에게 전화를 자주 하시고 시시콜콜 말씀이 많으시다. 옆에서 전화소리를 듣는 남편은 부럽단다. 아버지와 딸이 하하 호호 애기하는 걸 보면 신기하다고 한다. 많이 허전해하시는 아버지, 많이 외로운 아버지, 너무 멀리 시집을 와 버려 자주 찾아 가지도 못했고, 먹고 사는 일에 얽매어서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해 드렸고 용돈한번 제대로 보내지 못한 못 난 딸이지만 역시 자유롭지 못한 사정을 다 아시고 원망보다는 안쓰러워하시고 뭐든지 더 챙겨서 보내고 싶어 하시고 시어른, 남편에게 잘하라고 하시는데 실상 본인은 그런 대접을 못 받고 사시는 것이 아닌가 해서 속상하다.
올 여름 휴가는 남편과 둘이서 가볍게 떠나자고 했다. 계획 없이 편하게 가다가 쉬고 구경하고 놀고 오자고 했는데. 우리는 어느 새 전주로 향하고 있었다. 짧은 휴가기간 잠시라도 아버지랑 보낼까 했다. 일정이 그래서 하룻밤 자고 일찍 떠난다 했더니, 일찍 일어나셔서 마늘을 다듬고 계셨다. 불효자 딸은 저희들 놀기 바빠 일찍 가려 하는데 깨끗이 다듬은 마늘을 양파망에 담아서 박스에 넣어 차에 실어 주신다. 그냥 가면 섭섭하다 시며 지금 가면 또 언제 올지 모르는데, 내가 맛있는 밥 한 끼 사줄 테니까 먹고 가라고 하신다. 그대로 가면 너무 한다싶어 아버지랑 가까운 수목원에 들렀다. 정작 아버지는 허리가 아프셔서 잘 걷지 못하시고 우리끼리 구경하고 오라고 하시고 정자에 앉아서 쉬고 계신다. 잘 가꾸어진 수목원을 한 바퀴 돌고 오니 아버지는 가게에 들르셔서 아이스크림을 사주신다. 좋은 공기 많이 마시고 가라고 하시며 차로 이동하는 내내 여기는 예전에 어땠고, 저 동네는 어떤 곳이고, 옛날에 엄마랑 가족들이 놀러 왔던 얘기를 하신다. 우리는 너무 재밌게 애기를 듣는 동안 드디어 식사하는 곳에 도착했다. 우리는 여지껏 한우를 구경도 못하고 살았는데, 유명한 한우집에 데리고 가셔서 육회도 사주시고 갈비탕까지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걸 보시고 아버지도 흐뭇해하신다. 엄마가 계셨으면 하나밖에 없는 사위, 참 잘해주셨을 건데 남편에게 늘 미안했다. 아버지의 이런 모습이 사위에게 미안해서 더 잘 해 주실려고 하시는 것 같다. 우리는 얼마 되지 않은 용돈을 쥐어 드리고 발길을 돌렸다.
우리 아버지 9월 12일이 75번째 생신이시다. 갑자기 생각났다. 난 아직 단 한 번도 아버지 생신 상을 차려드리지 못했다는 것을....... 이번에는 포항에 오시라고 해서 정성껏 딸래미 손으로 생신 상을 차려드리면 어떨까? 고민이 생긴다. 우리 형편에 여행은 못하겠고 포항운하도 구경시켜드리고 아직 우리도 한 번도 타 보지 못했는데 배도 같이 타고 하루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박 용수, 김 화선씨 우리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