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작성일
- 2002.03.15 11:46
- 등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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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9
좋은 글이 있어서 올립니다.
*** 아내의 빈자리 ***
아내가 어이없는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지 4년,
지금도 아내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기만 합니다.
스스로 밥 한끼 끓여먹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남편
을 두고 떠난 심정이야 오죽했겠습니까마는 난 나대로 아이에게 엄마 몫까지 해주지 못하는 게 늘 가슴 아프기만 합니다.
언젠가 출장으로 인해 아이에게 아침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출근준비만 부랴부랴하다가 새벽부터 집을 나섰던 적이 있었지요.
전날 지어먹은 밥이 밥솥에 조금은 남아있기에 계란찜을 얼른 데워놓고 아직 잠이 덜 깬 아이에게 대강 설명하고 출장지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일이 손에 잡힐리가 있나요?
그저 걱정이 되어 몇번이나 전화로 아이의 아침을 챙기느라 제대로 일도 못본 것 같습니다.
출장을 다녀온 바로 그날 저녁 8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이와 간단한 인사를 한뒤 너무나 피곤한 몸에 아이의 저녁 걱정은 뒤로한 채 방으로 들어와 양복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침대에 대자로 누웠습니다.
그순간, "푹!" 소리를 내며 빨간 양념국과 손가락만한 라면 가락이 침대와 이불에 퍼질러지는게 아니겠습니까? 펄펄 끓는 컵라면이 이불속에 있었던 것 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 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무작정 불러내어 옷걸이를 집어 들고 아이의 장딴지와 엉덩이를 마구 때렸습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이불은 누가 빨라고 장난을 쳐, 장난을!"다른 때 같으면 그런 말은 안했을텐데 긴장해 있었던 탓으로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때 아들 녀석의 울음섞인 몇마디가 나의 매든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들의 얘기로는 밥솥에 있던 밥은 아침에 다 먹었고, 점심은 유치원에서 먹고, 다시 저녁때가 되어도 아빠가 일찍 오시질않아 마침, 싱크대 서랍에
있던 컵라면을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선 안된다는 아빠의말이 생각나서 보일러 온도를 목욕으로 누른 후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붓고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출장 다녀온 아빠에게 드리려고 라면이 식을까봐.. 내 침대 이불속에 넣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런 얘길 진작 안 했냐고 물었더니, 제 딴엔출장다녀온 아빠가 반가운 나머지 깜박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들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싫어 화장실로 뛰어들어간 저는 수돗물을 크게 틀어놓고 엉엉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한참이나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와서는 우는 아이를 달래 약을 발라주고 잠을 재웠습니다. 라면에 더러워진 침대보와이불을 치우고 아이 방을 열어보니 얼마나 아팠으면 잠자리 속에서도 흐느끼지 뭡니까?
정말이지 아내가 떠나고 난 자리는 너무 크기만 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지... 나는 그저 오랫동안 문에 머리를 박고 서 있어야 했습니다
아내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이제 5년. 이제는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도한데, 아직도 아내의 자리는 너무나 크기만 합니다. 일년전에 아이와 그 일이 있고 난 후, 난 나대로 아이에게 엄마의 몫까지 더욱더 신경을쓰기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아이도 나의 걱정과는 달리 티없고 맑게 커가는 것 같아서 아이에게 정말로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의 나이 이제 7살, 얼마후면 유치원을 졸업하고 내년부터는 학교를 갑니다.
그동안 아이에게 또 한차례 매를 들었습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전화가 오더군요. 아이가 그 날 유치원을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떨리는 마음에 회사를 조퇴하고 바로 집으로 와서 아이를 찾아봤지만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애타게 아이를 찾았습니다.그런데, 그놈이 놀이터에서 혼자 신나게 놀고 있더군요. 너무나도 아이에게 화가나서 집으로 온 후 아이에게 매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단 차례의 변명도 하지 않고, 잘못을 빌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날은 유치원에서 부모님을 모셔놓고 재롱잔치를 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몇 일 후, 아이는 유치원에서 글을 배웠다고 너무나도 기뻐하는 모습으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아이는 저녁만 되면 자기 방에서 꼼짝하지 않고 글을 써대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지 비록,아내가 없지만 하늘에서 아이의 모습을 보곤 미소짓고 있을 생각을 하니 난 또 다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년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겨울이 되고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올때쯤 아이가 또 한 차례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날 회사에서 퇴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찾는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 전화는 우리 동네의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우리 아이가 우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