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귀 우리 아빠>
- 작성일
- 2004.12.23 16:39
- 등록자
- 이혜경
- 조회수
- 37
우리 아빠는 귀가 얇으시다. 누가 어디에 뭐가 좋다고 하면 혹 하셔서 이물건 저물건을 사다 날리신다. 몸에 좋다는 약도 안 먹어본 게 없다. 동충하초를 비롯, 오가피, 홍삼 액기스 등등...그렇다고 건강하느냐...그것도 아니다. 몸에 안 좋다는 것도 권하는 사람들이 세상엔 참 많으니깐...오늘도 뭔가를 사오셨나 보다. 안방이 시끄럽다. “에고 내가 진짜 못살아...정말...!”짜증섞인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거실을 넘어 내방까지 들려온다. “이번엔 진짜 좋은거야. 이건 바위도 갈면 흙으로 된데. 나도 왠만하면 안 살라했는데....사정이 참 딱하더라구...마누라는 진작에 도망가고 자식은 심장병이래. 수술을 안하면 죽는다지 뭐야. 병원비도 없어서 퇴원해야 된데...퇴원하면 갈데도 없데...”“아고! 아 양반아. 그걸 믿어...당신 그 팔랑귀 땜에 내가 몸져 병원에 실려 가게 생겼구만 남의 집 걱정하기는...에고, 내팔자야! 이 믹서기는 또 어디다 팔아야 되나...” 오늘은 믹서기인가 보다...우리집엔 믹서기가 다섯 개 있다. 그중 네개는 아빠가 사오신 거다. 남의 말에 솔깃해서 좋다좋다 두세번만 하면 안 좋은것도 좋은걸로 바꿔 들리는 팔랑귀 우리 아빠! 하지만 정작 그건 귀가 얇아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딱한 사정을 그냥 흘려 버리지 못하는 착한 마음에서 우려 나온다는 것을 알기에 아빠의 그런 행동이 뭐 때론 답답하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새빨간 거짓말을 마치 사실처럼 믿는 그 순수함이 싫지만은 않다. 이젠 나이가 들고 힘이 없으셔서 예전만큼 외출을 나가시지 못하는 아빠는 물건을 사오는 날도 부쩍 줄어 드셨다. 그러나 그렇다고 남의 말에 현혹되지 말라는 법 또한 없다. 세상은 보다 편리하고 지능적이지 않았는가.
“자, 이제 방송 시간 5분 남았습니다. 준비해온 수량도 몇장 안 남았네요. 정말 좋은 기회. 절호의 찬스! 놓치시면 후회합니다. 지금 전화주세요”
쇼핑호스트들의 말이 빨라짐과 동시에 아빠의 심장박동수와 전화번호를 누르는 손의 움직임에도 힘이 들어간다.
우리 아빠가 요즘 좋아하시는 노래 "어머나!" 들려주세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