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글입니다.
- 작성일
- 2006.03.28 09:22
- 등록자
- 김형일
- 조회수
- 587
안녕하세요. 금강송을 제작한 김형일 기자입니다.
우선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지난 12일 올리신 글을 제가 미처 보지 못했고, 지금에서야 해명의 글을 올리게 된 점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우선 본 프로그램은 춘양목을 비하할 뜻이 전혀 없음을 밝혀 드립니다. 춘양목이란 명칭이 현재 봉화 일대에서 자라는 우수한 소나무를 통칭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고 저도 동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프로그램에서 표현한 부분은 춘양역과 석포역등 영암선 일대 주요 역이 50년대 이후 우수한 소나무의 반출지 역할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춘양이란 지명이 바탕이 되어 자연스럽게 춘양목의 명칭이 된 점을 설명한 것일 뿐입니다.
방송에서도 나왔습니다만 “애당초 나갈때에 춘양에서 나갔기 때문에 춘양목이라고 이름이 나가지고 서울가서도 춘양목이라 해야 알아줬다.“ 라고 춘양역 대한 통운에서 근무하셨던 분이 증언하고 계십니다. 제가 취재한 바로는 춘양역을 통해 춘양 지역뿐만 아니라 봉화, 울진, 삼척 일대 많은 소나무들이 외지로 반출됐고 춘양목이란 명칭이 일반 명사화 됐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50년대에서 70년대 사이를 거치면서 우수한 소나무 자원이 무분별하게 훼손됐던 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반추해야 한다는 내용 중에 춘양목에 대한 언급이 포함됐을 뿐이지 춘양목을 폄하하고자 하는 뜻은 결코 없었습니다.
다음은 춘양목과 관련돼 방송된 내용입니다.
(VOD 39분 50초부터 시작돼 42분 43초까지입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의 조그만 시골역인 춘양역, 이곳이 바로 해방후 벌채된 금강송이 외지로 실려 나가는 근거지였다. 금강송의 또다른 이름인 춘양목도 바로 이 역에서 유래됐다.
(60-70년대 당시 춘양역 대한통운 관계자 인터뷰 -애당초 나갈 때 춘양역에서 나갔기 때문에 그게 적송인데, 적송이라카는건데 춘양목이라고 이름이 나가지고 서울가서도 춘양목해야 그 나무를 알아줬다.)
춘양역이 들어선 것은 1955년, 태백산맥 일대의 임산물과 광산물을 수송하기 위해 개통된 영암선의 한 역으로 개통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길을 따라 울진 봉화 삼척 일대의 수많은 금강송이 도시로 실려 나갔다. 역시 영암선상에 있는 한 역인 경북 봉화군의 석포역.
이곳에서 1950년대 이후 얼마나 많은 금강송이 반출됐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를 찾아낼수 있었다.
금강송 반출 기록은 역이 개통된 이듬해인 1956년부터 시작됐다.1958년에는 한해 만 2천 6백 73톤의 나무가 실려 나갔다고 적고 있다.
(인터뷰 -석포역관계자
영암선 개통이후 봉화지역에서 생산된 원목이 전국 각지로 발송하게 됐다. 72년대초에 원목 생산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발송량이 줄어들게 됐다.)
조선 5백년동안 엄격한 봉산정책에 따라 잘 보존돼 오던 금강송은 일제시대와 6.25 산업화 과정을 밟으면서 불과 수십년사이에 무분별하게 훼손돼 갔다. 그 결과 현재 남아있는 천연 금강송 숲은 아주 드물게 됐다. 이제 금강송 군락지는 더 이상 보호하지
않으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됐다.----)
본 프로그램은 류승하님께서 표현하신대로 한편을 부각시키기 위해 한편을 폄하할 이유도 없고 그러할 의도도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나무인 소나무의 역사를 되달아 보고, 소중한 소나무 자원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해보고자 만든 다큐멘터리일 뿐입니다.
또 본 프로그램에서 금강송은 특정 지역의 소나무를 지칭한 명칭이 아니며 현재 산림청이 한국의 대표적인 소나무로 육성하고자 하는 봉화, 울진등 경북과 삼척등 강원도 일대의 우수한 형질의 적송, 즉 수형이 곧고 통직하며 강도가 높은 소나무를 통칭하는 명칭으로 본
프로그램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프로그램의 본래 의도와 달리 류승하님께서 지적하신대로 일부 내용이 춘양목에 대한 폄하로 비춰지거나 춘양목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계신 봉화 지역민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다시 한번 금강송 다큐멘터리가 춘양목을 비하할 의도가 없었음을 밝혀드리는 바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