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어키는 형제의 나라
- 작성일
- 2002.06.09 13:15
- 등록자
- 손락규
- 조회수
- 2725
이제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터키를 위해 우리가 응원해 줍시다.
'Brother Country Turkey'
혈맹의 나라 형제의 나라 터키 이제는 빚을 갚아야 할 때
미국은 한국을 공산당의 마수에서 구해준 은혜의 나라다. 최근 들어 미국의 자국이기주의로 반미감정이 일어났지만 아직도 많은 한국인에게는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정서이며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방위전략측면에서 우리를 도운 것일 뿐 순수하게 자유와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운 것이 아닌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한 착각 속에서 미국을 대해왔다.
그런데 터키가 당시 참전을 결정하고 병력을 모집한 과정의 얘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당초 터키는 한국전쟁에 5000명 정도의 병력을 보낼 작정이었다. 그러나 모집결과 1만5000명에 달하는 병력이 자원을 했다고 한다. 동양의 자그마한 나라가 전쟁으로 공산화될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를 듣고 너도 나도 `한국행`을 자원했다는 것이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이었고, 전사자만도 1,000명이 넘었다. 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생존해 있는 터키의 참전용사나 그들의 후손들은 이름 앞에 `코렐리(Koreli - 한국인)`라는 표기를 하고 있단다. 우리는 이러한 터키인들의 `한국사랑`을 모른 채 그저 우리가 잘나서 이 만큼의 부를 누리고 산다고 생각해왔던 게 사실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73년 한국과 터키는 우호 협력의 관계를 보다 심화시키고자 양국간 상호 상대방 명칭을 딴 공원을 조성하기로 하여 앙카라의 구 터미널(기차역 근처)앞에 한국공원이 한국 정부에 의해 1973년 한국 참전 전사자를 기념하여 조성했다. 한국에도 여의도 인도네시아 대사관 옆에 앙카라 공원이 조성했다. 그러나 그후 한국과 터키의 우호 협력관계의 눈에 띄는 진전은 보이지 않는다.
터키라는 나라는 자국의 이익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이득도 없는 한국에 오직 인류애로서 미국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병했고 터키가 보낸 군대는 모두 차출이 아닌 자원병이었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 은혜가 깊다. 이를 계기로 터키는 지금까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며 한국이 잘살게 된 것 또한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는 그 사실조차도 잊고 있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맞다. 한국에게 터키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은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는 무관심하고 오히려 관심을 갖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이기적 습관이 그 원인일 것이다.
우리가 월남에 파병을 한 것이 터키와 같이 조건 없는 파병이었는가? 우리의 국익을 위한 파병이었다. 외국에서 지진참사가 나서 구호성금을 모을 때도 피해자 가운데 한국인이 있으면 온 국민이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진이 났나보다 하고 지나쳐 버리고 만다. 그러나 터키 국민은 한국 동란 시 참전으로 맺은 인연으로 인하여, 한국인을 코렐리(Koreli)라고 부르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문제 발생시 적극 도와주려 하고 있다.
터키는 한국 전쟁 당시 우리를 위해 싸워준 민족이다. 저들이 피 흘렸고 죽었으며 상처를 입었다. 그래도 그들은 우리를 형제라고 부른다. 그리고 50년 동안 끊임없이 우리 민족을 사랑했다. 사실 우리 민족은 저들의 짝사랑을 외면했고 그 실제를 몰랐다. 88 올림픽 때에는 “형제의 나라에서 올림픽을 한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하면서 24시간 내내 TV 방송을 하기도 했고, 국제 대회 때마다 한국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터키에 이 은혜를 갚지 못했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정부가 감사의 뜻을 표한 일이 없다. 오히려 무례를 끼치기도 했다.
1999년 8월 터키 대지진으로 수만 명이 죽고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을 때 정부는 7만 달러를 재난 복구 지원금 조로 보냈다. 이 돈을 받아 든 현지 공관장은 얼굴이 뜨거워 터키정부에 전달하지 못했다 한다. 넌지시 알아보니 가난한 방글라데시도 10만 달러를 보내 왔더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부끄러워 한 정신과 의사 (이시형박사님)등이 중심이 되어 모금한 100만 달러가 도착한 뒤에야 정부 지원금과 함께 전달해 겨우 체면을 차렸다. 7만 달러면 돈 얻으러 오는 가난한 나라 정상들에게 주는 용돈 수준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사정이 IMF로 인해 좋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보다 적은 돈을 6ㆍ25 참전국에 원조금으로 보내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으니 이런 망신이 없다.
우리나라가 한국전쟁의 배후였던 러시아에 제공한 차관이 20억 달러다....
도와준 은인에게 위로금으로 7 만원 부조하고 피눈물을 흘리게 한 사람에게는 되받을 보장도 별로 없이 20억을 차용해준거...생각할수록 말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