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군 지품면 속곡리 태풍에 도로 전체 유실,파괴되.
- 작성일
- 2002.09.02 11:48
- 등록자
- 조희권
- 조회수
- 1980
속곡리에 사는 주민이다.
엊 그제 토요일 태풍오던 날 볼 일 본다고 온 가족이 영덕읍에 나왔다가
농업기술센터 앞 도로가 물에 잠겨서 하루를 영덕읍에서 자고 일요일에
교회 예배보고 1시 쯤 되서 집에 간다고 나섰다.
우선 34번 국도 눌곡리 구간 한차선이 20미터 정도 냇물에 떠내려 갔다.
그리고 속곡리에 들어가려는데 진입부분인 신안리부터 도롯가에 흙이 쏟아 져 있고
나뭇가지며 풀이 길에 쌓여 있었다.
34번 국도에서 속곡리 쪽으로 한 500미터 지점부터 일은 벌어져 있었다.
도로 옆에 흙이 보두 떠내려 갔고 우선 도로 변에 서있던 전화선 지나가는 전봇대가 하나가
지반이 무너져서 그대로 빠져있었다. 전화 케이블은 도로위에 얹혀 있었다.
그리고 여름 한 철 관광객들에게 돈 받는 콘테이너 박스는 떠내려 갔고 그 자리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거기서 한 20미터는 도로 채로 떠내려 갔다.
남은 차선으로 조심조심 가기를 400미터 더이상 차가 갈 수는 없었다.
시멘트 포장 도로가 40미터 정도 완전히 무너졌다. 한 쪽은 냇가 한 쪽은 깍아 지른 바위
였는데 우선 냇 물이 축대를 무너뜨리고 도로 아래에 있는 크고 작은 돌이며 모래,흙을 모조리
쓸어갔다. 냇가와 90도 각도로 있는 골짜기에서 흐른 물도 약해진 도로 지반 틈으로 흘러서
모조리 다 쓸어 버렸다. 내가 보았을 때는 폭발이나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벽 같이 정신 없이
포개져 있었다.
길 아래로 지나가는 지품면민 1,500명이 먹는 상수도 관이 다 드러났다.
조심 조심 발을 디뎌서 다시 온전한 시멘트 길을 밟고는 더 이상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면서
걸었는데 채 300미터도 못 가서 할 말을 잊었다. 우선 시멘트 길이 끝나는 지점이 폭발 난 것 같이
길이 깨져 있었고 그 다음 부터는 어디다 발을 디뎌야 할 지 모를 만큼 길이 아에 없어졌다.
비포장 도로길에 큰 돌 몇 개 빼고 작은 돌들과 모래,흙들은 모두 사라졌다.
마치 설악산 무슨 계곡에 물이 빠진 듯 했다.
그 다음 부터는 속곡리 전체 길이 같은 상황이다.
다리가 있던 곳은 버드나무가 떠 내려가다가 걸린채 그대로인데 다리 양 쪽에 흙이
있던 자리는 흙이 모두 떠 내려 갔다. 허벅지 까지 잠기는 물을 건너야 다리에 오를 수 있었다.
축대도 쌓지 않고 그냥 비포장 도로를 만든 곳은 여지 없이 냇 물이 할켜서 도로 자리에 아예
연 못을 만들어 놓았다. 또 이런 곳은 대부분 전기 전봇대 보다 작은 전화선 지나가는 전봇대가
도로 옆 지반과 함께 무너졌다.
물을 피하려고 산으로도 가고 암벽 등반 하듯 바위 붙잡고 용을 쓰면서 가다보니 속곡 첫
동네인 우리 집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다. 속곡리 첫 집을 기준으로 500미터 아래 쯤부터는
도롯가 축대는 그대로인데 도로에 흙이 엄청 파여 있었다. 그리고 축대가 끝나는 지점부터
4,5번 째 되는 우리집 까지는 냇 물이 불어난 자기 덩치를 어쩌지 못해서 도로 까지 넘쳐 흘렀다.
도로가 한 20센치 정도 파일 만큼 엄청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비포장 도로이기는 해도 우리 동네에서는 그나마 도로사정이 나은 우리 집 까지가 이 만큼이니
윗 동네는 말도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비로 잠긴 우리 집으로 건너는 잠수교를
피해 100미터 아래에 있는 다른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왠 걸 우리가 부쳐 먹는 밭 300평 중
한 80평 정도가 무너져 버렸다. 울릉도에서 씨를 가져왔다고 늦되기는 해도 알이 굵고 노랗다고
장인이 하루에도 몇 번 씩 들여다 보던 수확이 며칠 남은 옥수수 2,000그루 중 일어어서 나를
반기는 놈은 하나도 없이 모두가 누워 있었고 그 사이 사이 심은 콩도 그냥 업드려 울고 있었다.
냇가와 도로를 정면으로 보는 우리 집에 올라가서 다시 도로를 보니 우리 집 앞 잠수교보다 150
미터 위에서 부터 물이 도로로 넘쳐 흘렀다.
처음에 시멘트 도로 무너지고 사라진 것을 보면서 축대만 옳게 쌓았어도 물이 차라리 도로위로
넘어가지 축대를 쓰러 뜨리고 지반으로 다져 놓은 작은 돌과 흙을 쓸어 가겠는가 하면서 이
것은 도로 부실 공사가 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올라오면서 냇 물을 보니 엄청나게 양이 많았다.
물이 전혀 흐르지도 않던 골짜기 마다 모두 폭포 처럼 물이 흘렀다.
그리고 집에 와서 측우기 대용으로 쓰는 페인트 빈깡통을 보니 집 나가기 전 2센치 정도 이던 것이 31센치나 되었다. 뒷 집 사는 분 들께 물어보니 오후 3시에서 10시 사이에 주로 비가 왔다고
하니 7시간에 비가 300미리 오면 이 정도는 속곡리 역사에는 없는 비로써 어쩔 재주 없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하여튼 인재든 천재든 속곡리에는 큰 재앙이 닥쳤다.
도로가 안되면 속곡리에 학교 다니는 10명이 넘는 아이들도 문제고 그 간의 많은 비로 올해는
송이 버섯을 많이 딸거라고 기대를 하
